교황 "교리적 문제 해결" 가속도
1980년 엘살바도르 우익 군사 정권에 암살된 남미 해방신학의 상징적 인물 오스카 로메로(1917~1980) 대주교에 대한 교황청의 시복 절차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영화 ‘로메로’로도 유명한 오스카 대주교가 성인(聖人) 전단계인 복자로 선포되면 좌파에 염증을 내온 가톨릭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로메로 대주교를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것을 막던 교리적 문제를 이미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해결했다”며 시복 심의 절차가 교황청 시성성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교황은 “로메로 대주교는 나에게 하느님의 종”이었다며 “그의 시복이 빨리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교황은 지난해 5월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면담 때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 추진 의사를 밝혔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순교를 죽음으로 가톨릭 신앙을 지킨 경우로 한정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목을 하다 죽어도 순교로 인정할 것을 검토하도록 신앙교리성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순교의 개념을 확대할 방침임을 시사한 것이다.
로메로 대주교 시복을 둘러싼 신학적 쟁점은 그가 살해된 것이 신앙을 고수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난한 민중을 도우려는 정치적 행동 때문인지 가리는 것이었다. 남미 가톨릭 교회에서 태동해 크게 유행한 해방신학은 사회ㆍ경제적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 해방신학의 기수가 로메로 대주교였다. 그는 좌익 반군과 내전을 벌이던 우익 군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독재에 공개적으로 맞서 싸우다 1980년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미사 중 총에 맞아 숨졌다. 2010년 첫 좌파 정권 탄생 직후 엘살바도르 정부는 그의 죽음에 공식으로 사죄를 했지만 여전히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진 엘살바도르 내전에서는 로메로 대주교 말고도 7만5,000명이 숨졌다.
바티칸은 그 동안 해방신학을 마르크시즘으로 간주해 엄격하게 단속해왔다. 이런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부정적 견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이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해방신학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들은 정치적인 해석보다 기도를 통한 구원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프란치스코도 이전 교황과 다름 없다.
하지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다 죽임 당한 성직자를 교회가 외면하는데 적지 않은 의문을 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로메로 대주교 시복과 관련한 교황의 이날 언급은 해방신학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기 보다 공식으로 이름만 붙지 않았을 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에 이미 성인인 로메로를 인정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BBC는 해석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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