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불만 따른 일시적 이성 상실… "노출증 단정 어려워" 다른 진단도
차관급 고위 공직자의 음란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교수, 판사, 대기업 임원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이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거나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하다가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문가들은 성(性) 도착증의 한 종류인 ‘노출증’ 환자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1995년 유명 모델을 애인으로 둔 영국 영화배우 휴 그랜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매춘부와 차 안에서 성매매한 것, 같은 해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도 같은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성 도착증은 정상적인 성 행위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성적 질환이다. 성적 공상을 자극하는 물건에 집착하는 페티시즘과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공공 장소에서 성기를 노출하거나 노출했다는 상상을 하며 자위 등 음란행위를 하는 노출증, 여자 화장실 등을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론 어릴 적의 성적 콤플렉스 탓에 노출증이 생긴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노출증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남성이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 상태에서 거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나는 행동으로 분석한 바 있다.
노출증이 있더라도 평소에는 잘 억제하면서 지낼 수 있지만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참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 성적 충동이나 욕구에 정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환경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성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다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일탈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노출증 등 성 도착증은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선완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 도착증은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며 “정신적 문제라면 정신과 치료로, 호르몬 문제라면 호르몬 치료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성적 일탈행위를 섣불리 정신질환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출증 환자는 행위 자체보다는 깜짝 놀라는 상대 여성의 반응을 보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데, 김 전 지검장은 여성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일탈행동을 한 만큼 노출증 환자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지검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낮에는 억눌러왔던 성 욕구가 밤에 일시적으로 이성을 잃고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하철ㆍ버스를 이용하는 10~40대 일반인 441명을 대상으로 노출증 피해 경험을 조사한 결과, 69명(15.6%)이 노출증을 보이는 이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69명 가운데 여성이 54명으로 90%였다. 2회 이상 성적 노출행위를 당한 이는 34명(56.7%)이었다. 성적 노출행위를 당한 곳은 학교ㆍ직장 23명(38%), 도로 14명(23.4%), 집이나 집 인근 10명(16.7%) 등의 순이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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