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바꾸자는 다짐 어디 갔나
전혀 달라지지 않은 대통령과 정부
특별법, 사법체계 논쟁 뛰어넘어야
4월 16일로 돌아가 보자. 그날 오전 세월호 침몰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바다 한가운데 비스듬히 누워있는 세월호 모습이 TV화면에 생생히 보였다. 해경경비정 투입, 헬기 도착 등 구조를 알리는 자막이 연달아 나왔다. 학생과 승객 전원이 구조될 것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점심 시간에 세월호가 화제에 올랐지만 단순사고 정도로 취급했고 오후 들어서도 이런 낙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수백 명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경악했다. 온 국민이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 순간 우리가 자랑해온 대한민국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깨달았다. 우리의 형편없는 수준과 역량을 똑똑히 목도하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다음날부터 그 동안 가려져왔던 우리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 대통령은 최고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했고 정부는 무능했다. 해경은 자신들의 임무가 뭔지도 몰랐고 관제센터는 자리를 비웠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을 팽개쳤다. 해운사와 관리감독기관은 돈 몇 푼에 멋대로 법을 어겼다.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었고 악취를 풍기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대한민국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치인들의 약속이 쏟아졌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났다. 그때의 다짐과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고,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변했는가? 장관들은? 일선 공무원은? 새누리당은? 야당은? 그리고 국민 개개인은?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똑 같은 나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월호 피로를 말한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하고 장사가 안 된다고 한다. “그만하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거나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고도 한다. “유족이 벼슬이냐”는 막말도 거침없이 퍼붓는다.
세월호 참사가 피로를 운운할 사안인가. 그것은 과거를 망각하고 적당히 넘어가자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힘들다고 외면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할 국가적 과제다. 집권층과 국민들 머리 속에 깊게 각인될 때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끝없이 묻고 따져야 한다. 꼭 대형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한 단계 높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한참 논란을 빚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도 이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가 법체계 위반이라는 게 여당 주장이지만 세월호 문제는 사법체계 논쟁에 가둘 성질이 아니다. 전례도 있고 사법체계를 흔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절충안을 찾을 수 있다. 이 사건 자체의 기이하고 전례 없는 특성을 강조한다면 그 이상이라도 해야 마땅하다.
청와대와 여당이 한사코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막는 속사정이 박 대통령 보호에 있다고 짐작할 여지는 충분하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참사 당일의 아리송한 박 대통령 행적이 밝혀져 큰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는 세월호 유가족과 야당, 심지어 여권 일각의 요구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동조단식 시민이 수만 명에 이르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도 오불관언이다. 특유의 불통병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
중국의 계몽주의 지식인 량치차오(梁啓超)는 1910년 쓴 조선 멸망의 원인이란 글에서 우리의 민족성을 비판했다. “조선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유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명령이다.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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