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수 무관 양도차익 공제, 종부세 차별폐지 등도 거론
'내 집 마련 꿈' 청약제 흔들고 서민 주거안정 대책은 빠져
정부가 다주택자들이 집을 더 살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과거 투기수요 억제 목적으로 도입한 족쇄들을 잇따라 폐지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작 40%가 넘는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은 배제돼 결국 ‘부자만을 위한 대책’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국토교통부가 1일 발표한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에는 주택 청약 시 무주택자로 간주하는 전용 60㎡ 이하 소형 저가 주택의 기준을 현행 공시가 7,000만원에서 1억3,000만원(수도권)으로 상향하고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감점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규 아파트 분양 시 유주택자도 무주택자와 최대한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주택 청약제도의 기조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상당하다. 일정 기간 청약통장에 자금을 넣으면 자격이 주어지는 주택 청약제 자체가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 꿈을 돕기 위한 성격이 강했기 때문.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최승섭 부장은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사람도 청약 통장을 만들어 새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청약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다주택자 차별 폐지’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50~60%)폐지와 취득세 차별폐지 등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거래할 때 추가로 내야 했던 세금을 감면해주는 정책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더구나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엔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보유주택 수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게 적절한지 전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이번 대책에 포함된 청약제도 개편을 비롯,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와 종합부동산세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1주택 이하는 10년을 보유할 경우 양도차익의 최대 80%까지 공제받는 반면 2주택 이상은 30%만 공제받는다. 국토부 기조대로라면 보유 주택 수와 무관하게 공제율이 동일하게 80% 적용을 받는 등의 제도 개편도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에도 현재 1주택 보유자는 공시가격 9억원 이상, 2주택 이상 보유자는 6억원 이상에 과세하고 있지만 이를 차별 없이 통일해 다주택자도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다주택자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공식적인 명분은 ‘비정상의 정상화’다. 부동산 과열기에 도입된 징벌적인 조치인 만큼 제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정책들이 다주택자들의 매매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골적인 ‘구애’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실수요에 해당되는 무주택자들이 집을 안 사니 다주택자들의 투기수요라도 부추겨서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유층에 대한 세제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자 감세’나 다름 없다는 시각도 있다. 진남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차별 폐지라고 하지만 결국 속을 들여다보면 부유층에 속하는 다주택자들에 대한 세금 부담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라며 “40%가 넘는 무주택자나 1가구 1주택자에게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부동산 경기 살리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무주택자를 위한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투기수요를 부추기는 것은 시장에 인화성 물질을 끼얹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며 “불이 붙을 경우에 대한 안전 대책과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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