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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故 김수환 추기경 중재로 개헌 물꼬… 96년 총파업 사태 시민단체가 해결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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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故 김수환 추기경 중재로 개헌 물꼬… 96년 총파업 사태 시민단체가 해결 실마리

입력
2014.09.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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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교원평가제법 개정 과정… 이해 당사자 참여 협의체 구성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민사회가 나서 첨예한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거나 정부를 압박하면서 합의를 도출하는 등 사회적 중재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이 상당했다. 70~80년대 군부 권위주의 시절에는 김수환 추기경으로 대표되는 종교계가 그 역할을 맡았다.

1980년대 민주화를 거치면서 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눈에 띄게 성장해 정부를 견제ㆍ감시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데서도 뚜렷한 성과를 냈다. 1990년대 ‘한약 분쟁’ 과 ‘의약 분업 사태’ 해결이 대표적 사례다.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의사회는 1993년 약사법개정 과정에서 한약조제권을 놓고 6개월 이상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중재 협의를 통해 ‘한방의약분업 3년내 실시’ 등을 골자로 하는 조정안을 도출해 냈다. 유례없는 전공의 파업 등을 유발한 99년 의약분업 사태 때는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5개 시민단체가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시민대책위’를 꾸려 양측의 갈등을 봉합해냈다.

시민단체들은 96년 노동법ㆍ국가안전기획부법 날치기 통과로 촉발된 노동계 총파업 사태에서도 중재에 나서는 등 90년대 빈발했던 노사 갈등에서도 타협을 도출하는 데 적지 않은 힘을 보탰다. 이런 노력들은 1998년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인 노사정위원회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주민간 갈등으로 유혈사태까지 빚어졌던 2003년 ‘부안사태’의 경우에도 시민사회가 중재에 나서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시민사회의 중재안을 수용한 정부는 주민투표를 거쳐 부안 방폐장 건설을 백지화했다.

시민단체들이 성장하기 이전인 1970~80년대에는 종교계가 정부를 견제하거나 갈등을 중재했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87년 민주화 시국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개헌의 물꼬를 텄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추기경은 민주화 요구가 절정에 달했던 1986년 6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여 야당을 포함한 국민 전체의 화합 아래 힘을 합쳐 국가 대사를 풀어가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전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를 잇따라 만나 호헌철폐라는 합의안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다자간 협의체를 꾸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낸 사례도 많다. 2009년 노동법 재개정 문제로 정국이 얼어붙었을 때도 노사정 6자 회담, 여ㆍ야와 경영ㆍ노동계가 참여하는 8인연석회의, 3자회담, 여야 양자회담 등을 잇달아 개최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꼬인 매듭을 풀어냈다. 같은 해 교원평가제법 개정 때도 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교조, 학부모단체 등이 6자 협의체를 구성해 여야가 관련법 개정에 합의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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