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비율 모두 50% 넘어… 전교생에 방과후 학교 강제
다양성 교육 취지는 무색 "스스로 취소 단초 제공한 것"
서울시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운영성과 종합평가에서 기준 점수 미달(100점 만점에 70점)로 재지정 취소 대상이 된 8개 자사고는 대부분 국어ㆍ영어ㆍ수학 등 입시 주요 과목 중심으로 수업을 편성하고, 강도 높은 선행학습도 실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양한 교육과정 편성’이라는 설립취지를 무시한 입시 위주 수업이 평가에서 당락을 갈라 자사고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다.
10일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감사 결과’에 따르면 배재고는 자율적으로 신청하도록 한 방과후학교에 전교생이 참여하도록 강제했다. 2010~2011학년도에는 1학년생 전원 참가, 2012학년도에는 ‘1~3학년 모든 학생은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방과후수업에 임한다’는 계획을 수립해 운영했다. 학생들이 방과후수업에서 배운 과목들은 ‘1학년 2학기 수학 선행반’ ‘수학 중상급 선행반’ 등으로 대부분 선행학습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우신고도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다 시교육청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특히 2009년 처음 지정된 1세대 자사고들은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진학실적을 인정받기 위해 선행학습을 폭넓게 실시했고, 이를 시험 문제로 출제했다.
지난달 ‘특권학교 폐지ㆍ일반고 살리기 서울공동대책위원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선행학습은 고2때 고3 과목인 적분과 통계ㆍ물리Ⅱㆍ화학Ⅱ 시험을 보거나 고1 시험에 2학년 과목인 물리Ⅰㆍ생물Ⅰ 문제가 포함된 경우가 다수 적발됐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안상진 부소장은 “자사고의 입시학원화는 설립취지와 정반대된 것”이라며 “재지정 취소의 단초를 제공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자사고 자신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가 올해 자사고 3학년생의 수업 시수를 조사한 결과 경희고ㆍ배재고ㆍ세화고ㆍ숭문고ㆍ신일고ㆍ우신고ㆍ이대부고ㆍ중앙고 등 이번에 재지정 취소 대상인 8개 자사고 모두 국어ㆍ영어ㆍ수학의 비율이 50% 이상이었다. 이대부고(61.29%), 세화고ㆍ중앙고(각 60.75%) 이과의 경우 60%를 넘겨 국영수 비중이 특히 심했다. 자사고와 달리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없는 일반고는 국영수 비중이 50%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 같은 교육과정의 파행 운영은 고스란히 재지정 평가에 반영됐다. 시교육청의 자사고 종합평가 세부결과에 따르면 ‘다양한 선택과목 편성ㆍ운영정도’(각 4점), ‘선행학습 방지 노력’(6점)에서 탈락 대상인 자사고 8곳 대부분은 3~5점(14점 만점)을 받는데 그쳤다. 시교육청의 재량평가 항목 중 자사고 설립 취지 인식 정도(5점 만점)에서도 이들 학교의 최고 점수는 1.5점이었다.
100점 만점에 70점 미만이면 지정 취소 대상인 평가에서 자사고들은 교육의 다양성 보장 등 설립 목적과 관련된 항목에서만 10점 넘게 깎여 스스로 재지정 취소 판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번 평가에서 총점 1위를 한 하나고(94.1점)는 위의 네 항목에서 17.8점(19점 만점)을 받았다.
그러나 자사고 측은 “평가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자사고교장협의회 김용복 회장(배재고 교장)은 “우리 학교만 해도 사회 11개, 과학 8개, 제2외국어 3개 과목(중국어 일본어 독일어)을 선택할 수 있는데도 다양한 선택과목 편성 항목에서 0점을 받았다”며 “늦어도 다음 주까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신입생 모집에 피해를 준 만큼 손해배상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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