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日 정부 파견 대표단의 피해자 16명 증언청취 영상 공개
유족회, 아베 주장 등 정면 반박 "고노담화 계속 부정 땐 추가 발표"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뒷받침할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극우 언론의 주장을 정면 반박할 영상이 21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영상에는 일본이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 발표 전 정부 대표단을 직접 한국에 파견, 위안부 피해자들로부터 관련 증언을 듣는 모습이 담겨 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는 15일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5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유족회는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21년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최근 일본 정부가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에 이르러 영상 일부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상은 1993년 7월 26일부터 5일간 당시 일본 총리부 심의관과 여성 인권위원, 통역 등 일본측 대표단 5명이 유족회 사무실을 방문해 고 김복선, 황금주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6명의 증언을 듣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은 고 김복선 할머니가 미야자와 정권의 일본 총리부 심의관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모습으로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주세요.” 일본인 심의관의 질문에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집 다락에 숨어 있던 이야기, 열여덟 살에 겪은 위안부 피해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당시 자리에 동석한 양순임 유족회장은 할머니의 말을 적고 있는 일본인에게 “좋은 결과(고노 담화)를 약속해달라”고 당부하며 위안부 피해자 실태조사 자료집을 전달했다. 영상에는 고 윤순만 할머니가 “일본군은 열세 살인 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며 비틀어진 팔을 들어 보이는 장면도 포함됐다.
유족회는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표현을 두고 조율했다’는 아베 총리 등의 주장도 반박했다.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조사를 한 것이고, 고노 담화에 담긴 표현은 한국 정부가 아닌 위안부 피해자들과 조율한 결과라는 것이다.
유족회는 고노 담화 발표를 앞두고 일본 정부와 일곱 차례 회의를 거쳐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청취에 합의했다. 유족회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며 유족회와 일본 정부의 만남을 반대했다. 그러나 유족회는 가해자가 동참하는 실태조사가 의미 있고 일본 내 과거사 반성에 적극적이던 양심세력과 연대해 힘을 실어주자는 차원에서 증언청취에 동의했다. 양순임 회장은 “종군 위안부를 일본군 위안부로, 증언조사를 증언청취로 바꾸는 등 일본과 이견이 있던 용어 사용도 우리가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유족회는 이 영상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증거 싸움’으로 몰고 가는 일본에 제시할 ‘살아 있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변원갑 유족회 고문변호사는 “공개한 영상은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며 “아베 정권이 영상을 보고도 고노 담화를 부정한다면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담화의 증거와 상관없이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려 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양 회장은 “일본이 과거사를 바로 잡고 한국 희생자에 대한 피해보상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백서를 발간, 국제사회와 나눌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족회는 나머지 영상을 일본 정부의 태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가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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