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정치입문 10여 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여성지도자 반열에 올라 한국정치룰 주도하던 그가 대표직 사퇴 및 탈당설까지 불거진다.
정치인은 위기에 처하면 의지 관철의 수단으로 종종 당무를 거부하거나 칩거에 들어가곤 했다.
박영선 사태를 계기로 정치지도자들의 당무거부 및 탈당 사례 등을 사진으로 엮어보았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MBC에 입사해 경제부기자와 데스크, 주말뉴스 앵커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박영선은 2004년 언론계선배인 정동영의장의 권유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으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 구로을에서 17대부터 내리 3선을 기록한 그는 국회법사위원장을 역임하고 지난 5월 제1야당의 첫 여성 원내대표에 오르면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였고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7.30 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위기에 빠진 야당을 구하라는 특명을 부여받았다.
2004년 총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하기위해 십자가를 맸던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와 오버랩되며 제2의 박다르크 칭호까지 얻었다.
야당 원내지도부를 이끌고 청와대에서 박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는 한국 여성지도자의 미래가 눈에 보이는 듯도 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세월호특별법 협상 실패와, 당의 진로를 결정할 비대위원장에 새누리당 비대위출신 이상돈교수를 앉히려다 당내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말았다. 칩거 4일을 맞는 그의 거취가 주목된다.
기억나는 당무거부 사례는 1990년 민자당 대표였던 YS 파동이다. 87년 대선에서 패배한 YS는 통일민주당 당원들을 이끌고 노태우의 민정당, JP의 자민련과 3당합당을 감행해 한살림을 꾸렸다. 거대정당 민주자유당 대표를 맡은 YS는 그해 11월 내각제합의각서가 언론에 유출되며 위기에 봉착하자 오히려 음모론을 주장하며 당무거부라는 초강수를 던졌고 고향 마산에 내려가 칩거했다. 그를 쫓아 무학산에 오르던 기자들을 뒤로하고 깊은 침묵으로 정상에 오른 YS가 꺼낸 첫 마디는 지금도 회자된다. "내 산 잘타제?"
노태우의 항복을 받아낸 YS는 대표직에 복귀했고 2년후 집권에 성공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에 나선 이인제는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추대형식으로 치러질것이라며 승리를 장담했던 그는 노무현이라는 돌풍을 만나 순회경선에서 패배하자 음모론을 주장하며 경선후보에서 사퇴한 후 서울 자곡동 자택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기자들은 그의 집 밖에서 뻗치기에 들어갔고 언론을 아는 그는 밤늦게 창문을 열고 고뇌하는 포즈를 취했다.
돌고 돌아 현재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8년 쌍용 김석원회장의 하차로 공석이 된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나서 부총재까지 오른 박대통령은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제왕적 당운영에 항의하며 탈당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미니정당을 운영하다 그 해 말 대선을 앞두고 결국 이회창총재의 손을 들어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발언으로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2002년 노사모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취임 후 몇 달 안돼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으로 국민을 놀라게 했다. 생애 첫 방미 일정을 마치고 5.18 집회에 참석했다가 대학생들로부터 친미행동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 나서다.
끊임없는 언설과 보수단체 및 언론의 집중포화로 공격받던 노 전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으로 인해 국회 탄핵을 받는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그해 총선에서 보란듯이 152석의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2002년 대선당시 정동영과 함께 차기주자로 대접받던 추미애의원도 당무거부의 경험이 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둘로 쪼개졌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민주당 조순형대표는 거센 역풍을 맞았다.
조대표 사퇴를 주장하며 당직을 내던진 추미애는 선대위원장으로 복귀해 3보1배의 고된 행군에 나섰지만 결국 민주당은 총선에서 참패한 후 다시 열린우리당과 통합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쳐진다.
칩거에 관한 한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를 따를 정치인이 있을까.
서강대 교수생활 중 YS에 발탁돼 정치에 입문한 후 한나라당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 경기지사를 거쳐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해 대표까지 역임했지만 그의 정치역정은 순탄한 듯 순탄하지 않았다.
2007년 대선후보경선에서 정동영에 패한 손학규는 이듬해 대표를 맡아 18대 총선을 치렀지만 81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후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대표직을 사임하고 강원 춘천의 농가로 들어간 그는 2년여의 칩거를 끝내고 2010년 다시 민주당 대표로 복귀했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후보경선에서 다시 문재인에게 패배했고 급기야 지난 7월 30일 등떠밀듯 휘말린 수원 재보선에서마저 정치신인에게 패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현재 전남 강진의 백련사 뒷산 토굴에서 부인과 칩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운의 정치인이다.
2014년 9월. 지방선거도 지났고 총선도 한참 후다. 박영선은 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시기가 아니었다.
깊은 고뇌와 속내를 알 순 없지만 10여 년의 정치인생에 적신호가 켜진것만은 분명하다.
며칠간의 칩거를 끝내고 그가 꺼내 들 카드는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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