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국회 선진화법을 뜯어고치겠다고 작심하고 나서고 있다. 여당 의원 10여명은 엊그제 의결정족수를 완화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간 합의 시에만 허용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 규정에 대해 권한쟁의 심판을 조만간 청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하겠다는 말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선진화법 개정 공세는 현실적으로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압박에 가깝다. 새누리당 개정안은 현재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돼 있는 안건 신속처리제를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5분의 3 이상으로 바꾸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선진화법에 걸려 통과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쟁점법안의 안건 조정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의원은 총원 28명 중 절반이 조금 넘는 15명이다.
법도 시대상황에 맞게 바꿔야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 공세는 자가당착이다.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여야의 쇄신ㆍ온건파 주도로 발의돼 2012년 5월 초당적 성원 속에 통과됐다.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도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했다. 18대 국회 당시 무려 97차례의 직권상정으로 여야의 물리적 충돌이 잦았던 게 배경이고, ‘몸싸움방지법’으로 불린 것도 그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신을 살리자는 뜻이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정치를 지배했던 19대 국회 전반기에도 입법처리 건수가 1,276건으로 선진화법이 적용되지 않은 17대(745건)나 18대 국회(1,241건)보다 많았다. 선진화법을 탓하는 새누리당의 논리가 군색하다는 얘기다.
물론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정부조직법처럼 여야 이견이 큰 법안 처리의 경우 시간이 오래 지체돼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는 부작용도 없지 않다. 야당이 쟁점 법안에서 유리한 입장을 얻기 위해 여야 합의가 이루어진 법안과의 처리를 연계시키는 행태가 빈번해지는 것도 선진화법의 앞길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입법 기능은 물론 국회 기능까지 마비되는 사태가 오래 이어지고, 나라 사정도 어려워져 집권 여당의 조바심을 자극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국회 마비사태를 선진화법이라는 제도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선진화법을 기반으로 상식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으로 보아야 할 측면도 없지 않다. 정치는 순리를 따라야 한다. 무리해서 탈이 나지 않은 적이 없다. 다수당의 밀어붙이기 횡포가 소수당의 폭력적 저항을 부르는 퇴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소집한 26일 본회의에서 여당이 91개 계류법안을 단독 처리하는 것은 선진화법의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국회 정상화를 둘러싼 여야 협의가 신경전으로 시간만 보낼 일이 아니다. 정치권 스스로 합리적 방안을 하루속히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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