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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빠줌마'에게 자유시간을 허하라

입력
2014.10.0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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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많은 육아고참들은 심심찮게 겁을 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지금이 좋을 때지. 애 나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다. 두고 봐라, 신세계!”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은 얼추 들어맞았다는 이야기. 두세 시간마다 젖을 찾고, 수시로 기저귀를 체크해 갈아 눕혀야 하는 아들 때문에 먹고 자는 일이 정상적으로 안되고, 다른 수많은 일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니 과연 신세계긴 신세계였다. (이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라고 생각한다면 ‘대략난감’이다.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 지원 없이 엄마의 정서안정을 기대할 수 없고, 엄마의 정서는 아이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게 이 세상 육아선배ㆍ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

하지만 여기에 더해 육아휴직을 하고 보니 이 충격에 버금가는 또 다른 신세계가 열렸다. 사실 업무에서 멀어지면 룰루랄라 마냥 좋아질 줄만 알았는데,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누구는 스트레스 총량 법칙이라고 하던데 여하튼!) 육아휴직에 들어서면 단순히 애 보는 일(이것만 해도 일이지만!) 뿐만 아니라 밥상차리기, 설거지, 빨래, 청소, ‘바깥사람’ 내조(?) 같은 일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휴직 전에도 ‘7대 3’(내가 3할) 정도로 분담해 하던 일이지만 이게 ‘3대 7’또는 그 이상이 되니 이야기가 완전 달라진다. (아빠아줌마? 빠줌마? 뭐, 대략 이런 존재가 된다.)

24년 역사에 걸맞게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는 합창단에 누를 끼치는 건 스스로 용납하기 힘들었다. 공연이 임박하자 ‘화요일 저녁 8시’가 아닌 때에도 연습이 이어졌는데, 아들을 들쳐 업고서라도 연습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닌 아들이 적잖게 방해가 됐을 텐데, 단원들의 배려 덕에 이럭저럭 넘어갔다. 지휘자(가운데)가 세컨드 테너 파트 점검 중인 모습.
24년 역사에 걸맞게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는 합창단에 누를 끼치는 건 스스로 용납하기 힘들었다. 공연이 임박하자 ‘화요일 저녁 8시’가 아닌 때에도 연습이 이어졌는데, 아들을 들쳐 업고서라도 연습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닌 아들이 적잖게 방해가 됐을 텐데, 단원들의 배려 덕에 이럭저럭 넘어갔다. 지휘자(가운데)가 세컨드 테너 파트 점검 중인 모습.

이리 저리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이것 저것 먹고, 해외 출장도 심심찮게 다니며 이 일 저일 하던 내가, 집에서! 이것만! 매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얼마나 버틸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크게 나쁘지 않다. 또 남은 휴직 기간 동안에도 웬만하면 다 해낼 것이다.

비결이 있다면 취미활동이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던 나는 이 활동을 통해 아내가 절대 보장하는 나만의 자유시간을 일찌감치 확보했다. 그래 봤자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2시간 남짓한 활동인데 육아에서, 가사에서, 아내의 이런 저런 잔소리에서 완전 해방될 수 있었다. 운전 중 신호대기 때 마주친 ‘고양시남성합창단 단원모집’ 현수막이 계기였다.

“여보, 나 저거 한번 해볼까?” 뒤에 앉은 아내는 “이 남자가 지금…” “노래는 무슨…”하며 떨떠름해 했다. “아줌마들이야 끼리끼리 모여서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 털면 되지만, 난 혼자 아니냐”, “육아휴직 스트레스 장난 아니라는데 그거 집에서 푸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아내는 결국 오케이 사인을 내렸고 난 그 구두결재와 동시에 현수막 전화번호를 휴대폰으로 찍어 저장했다. 운전대를 놓은 뒤 전화를 걸어 오디션 날짜를 잡고, 세컨드 테너 단원으로 입단했다.(적고 보니 본인 노래 실력이 대단하고, 그 실력으로 까다로운 관문을 뚫은 것으로 보이는데 둘 다 그렇진 않다.)

연습은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2시간. 매번 60여명의 단원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단원들 나이는 31세부터 65세까지, 평균 연령은 40대 후반으로 짐작된다. 직업은 여행사 식당 건축설계사무소 커피전문점 사장, 의사, 병원장, 자동차 판매원, 초중고 교사, 교장, 대학 교수, 일반기업 회사원, 소방관, 항공기 조종사, 공무원 등등.

지난달 28일 공연을 앞두고 고양아람누리 음악당에서 진행된 리허설 중간에 단원들이 지휘자와 반주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부부인 두 사람은 고양시남성합창단의 든든한 기둥이다.
지난달 28일 공연을 앞두고 고양아람누리 음악당에서 진행된 리허설 중간에 단원들이 지휘자와 반주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부부인 두 사람은 고양시남성합창단의 든든한 기둥이다.

이들과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린 게 큰 소득이지만, 이 자리는 나의 육아휴직 결정이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단원, 자식들 거의 다 키워낸, 손주까지 본 단원들은 한결같이(물론, 내가 휴직한 것은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는 단원도 있었지만) 부러움을 표했다. 주로 ‘나도 그때 정기자처럼 애들이랑 많이 놀아줬더라면…’하는 과거형 부러움에 ‘나중에 이 부자(父子)는 얼마나 잘 지낼까’ 하는 미래형 부러움까지 있었다. 고전적인 육아정보에 노하우에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덤이다.

합창단은 지난달 28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성공적으로 정기연주회를 마쳤다. 이로 인해 ‘화요일 저녁 2시간’의 자유를 앞으로도 계속 보장받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주일에 2시간씩 온전한 자유시간을 갖도록 해준 아내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누구한테 보이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공연 당일 ‘만6세 이하 입장 금지’에 걸려 로비서 TV모니터로,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준 두 사람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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