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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눈먼 자들의 국가'

입력
2014.10.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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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2014-10-01(한국일보)
지평선/2014-10-01(한국일보)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당연히 후자에 방점 찍혀야 할 참사가 ‘사건을 은폐한 사고’가 되어가는 현실을 질타한 소설가 박민규의 글이 화제다. ‘눈먼 자들의 국가’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내 구명조끼 입어….” 작가는 기울어가는 배에서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 이 글이 실린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 초판 4,000부가 발간 한 달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수렁에 빠진 출판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일대 ‘사건’이다. 소설가, 시인, 그리고 사회학, 정신분석학, 정치학 연구자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각도로 조명한 특집 덕분이다. 출판사는 500부 증쇄에 들어갔고, 여름호에 실렸던 소설가 김연수 김애란 등의 글을 함께 엮은 단행본 눈먼 자들의 국가도 곧 출간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며” 책값을 5,500원으로 낮췄고, 인세와 판매수익을 모두 기부할 예정이란다.

▦ 시인 진은영은 특집을 여는 글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에서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뻔뻔스러운 사회”를 아프게 헤집는다. 이미 망했다고 쉽게 말해 버렸던 “그 세상에 대고 있는 힘을 다해 질문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 그들과 함께 광장을 메운 이들을 비춘 소설가 황정은의 글 ‘가까스로, 인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 점점(點點)한 아름다움을 믿겠다. 그것을 믿는 나를 믿겠다. 그러니 누구든 응답하라. 이내 답신을 달라.”

▦ 책장을 덮고 ‘응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기어이 유가족이 배제된 채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극적 타결’됐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합의한 당사자들조차 딴소리를 쏟아낸다. “이 정권 아래서 진상규명을 바란 것은 애당초 그른 일이었다”는 한탄도 나온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면, 두 눈 부릅뜨고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박민규의 말처럼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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