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 지음ㆍ안진환 옮김
민음사 발행ㆍ584쪽ㆍ2만5,000원
재생에너지 기반의 사물인터넷이 모든 사물을 사람과 연결해 주고
3D프린터로 뭐든 만들 수 있어
소유가 무의미해진 평등한 지구, 40년 후 올 세상 예측 근거로 제시
사생활 보호ㆍ정보 보완 문제 등엔 뚜렷한 해결책 제시 못해
일상 생활용품부터 에너지, 각종 지식과 정보, 온갖 서비스까지 거의 모든 것이 거의 공짜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윤은 사라지고 소유는 무의미해지고 시장은 더 이상 필요없는 세상, 언제 어디서든 모든 지구인이 무엇이든 서로 나누고 협력하며 풍요를 누리는 세상을.
이 꿈 같은 이야기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신작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말하는 미래 전망이다. 거기서 더 나간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군림하지 못하고 경제 체제의 주변부로 밀려날 것이다, 경쟁 대신 협력에 기반한 공유 경제가 무대의 중앙을 차지할 것이라고. 리프킨은 늦어도 21세기 후반이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인류 역사에 없었던 신천지 유토피아가 등장하는 데 40년도 안 남았다는 소리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지만 의아스럽다. 리프킨은 꽤 설득력 있게 주장을 펼치지만 1 대 99로 나뉜 불평등 자본주의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서다. 지금 전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불평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어두운 진단을 내렸다.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위기는 리프킨이 ‘엔트로피’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등 여러 권의 화제작에서 진작에 예언한 바다. 그 동안 발표한 저작과 주장을 집대성한 이번 신작에서 그는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그 근거를 제시하며 새 시대가 온다고, 준비하라고 말한다.
먼저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개념부터 정리하자. 한계비용은 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드는 추가비용이다. 리프킨은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자본주의가 기술 혁신을 거듭하며 끝없이 생산성을 높인 끝에 한계비용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생산해봤자 이윤이 남지 않는 세상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촉진하는 핵심 요인으로 리프킨은 신기술 혁명, 구체적으로 사물인터넷을 꼽는다. “사물인터넷은 떠오르는 협력적 공유사회의 기술적 소울 메이트”라고 예찬하며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사물인터넷은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것에 컴퓨터를 내장해 데이터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한 예로 프록터앤갬블이 최근 개발한 블루투스 칫솔은 칫솔질 습관과 구강 상태를 칫솔이 알아서 점검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여주고 병원이나 보험회사에 알려준다. 사물인터넷은 모든 사물을 모든 사람과 연결하는 신경망이다. 기계, 건물, 주택, 숲과 강, 농경지 등 무엇이든 반도체칩 센서만 설치하면 신통방통 도깨비 방망이 같은 사물인터넷이 작동한다.
그가 생각하는 사물인터넷의 기술 플랫폼은 태양열,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세계에 흩어진 소규모 재생에너지 설비를 사물인터넷으로 죄다 연결하면 전지구적 에너지 공유가 가능하다. 가난한 외딴 마을에서도 다른 데서 나눠준 재생에너지로 생활에 편리를 누릴 수 있다.
한계비용 제로를 초래하는 극단적 생산성의 사례로 리프킨이 소개하는 또다른 신기술은 3D 프린팅이다.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을 하듯 무엇이든 집어넣고 분사하기만 하면 입체로 출력해내는 기술이다. 간단한 소품부터 자동차, 비행기, 건물, 심지어 인체 장기까지 출력할 수 있다. 이미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취미 삼아 3D프린터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쓰고 있다. 1,500달러면 고품질 3D 프린터를 살 수 있다. 급속도로 가격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일상적으로 쓰일 전망이다. 사물인터넷에 3D프린팅 프로세스를 내장하면 누구나 어디서든 원하는 물건을 생산할 수 있다. 소비자가 생산에 참여하는 프로슈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상품 생산과 유통에서 기업의 우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움직이는 동기는 이윤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이다. 기술 혁신으로 노동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돈벌이보다 비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거기서 보람을 얻는다. 놀이에 심취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중요해지고 사회적 자본을 모으는 게 시장 자본 축적보다 중요해진다.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고 나누는 그런 세상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리프킨은 대학의 개방형 온라인 강좌 확대, 협동조합의 만개와 사회적기업의 등장 등 여러 사례를 제시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재앙이 보여주듯 우주선 지구호의 위기는 이미 현실이고,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협력적 공유 사회로 갈 수밖에 없고, 사물인터넷이 그 기반이 될 거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끝내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다. 리프킨의 미래 전망은 결국 ‘기술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복음처럼 들린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변화의 불가피성을 심리적ㆍ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 면에서 두루 검토해 주장하지만, 기술 혁명의 그늘은 충분히 살피지 않는다. 일례로 사물인터넷의 정보 보안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들 수 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EU 집행위원회의 2013년 선언뿐이다. 사용자의 사생활 보호와 정보 보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일 뿐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리프킨은 “사물인터넷은 양날의 검”이라는 한 마디 말로 퉁치고 넘어간다.
이 책이 그리는 미래는 더 인간적이고 더 풍요로운 세상이다. 배타적 재산권 대신 오픈 소스 공유, 소유권보다 접근권, 시장 대신 네트워크로 굴러가는 세계다. 정말 그렇게 될까. 그대로 믿기 싶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이 자꾸 제동을 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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