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24명 평창서 봉사활동 후 농산물 구입
팥 찜질팩 제작해 수익은 기부 "침체된 농촌에 새로운 변화 기대"
가을 햇살이 따갑던 4일 오후 강원 평창 대화면의 비탈밭. 밀짚모자를 쓴 서울대생 24명의 손에 책 대신 팥단이 한아름씩 들려 있다. 학생들은 빨간색 목장갑을 낀 손으로 구슬땀을 훔치며 2,000여㎡ 밭의 팥 수확을 거드는 중이었다. 농사일은 해본 적이 없어 비탈밭에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해가 지자 기온이 확 떨어진 산마을 날씨에 감기도 걸렸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그 덕분에 닷새는 족히 걸렸을 팥 수확은 하루 만에 끝났다. 농민들은 “부족한 일손 탓에 올해 수확을 걱정했는데 다행이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날 농촌 봉사활동은 서울대 글로벌학생사회공헌단이 올해 8월부터 시작한 ‘Hello! Red(팥의 색깔을 지칭) Circle’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농촌 봉사가 뭐가 대수냐고 되물을 법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조금 다른 점이 감지된다. 농사 자체를 돕는 일에서 나아가 수확한 팥으로 찜질팩을 만들고, 그 수익금을 다시 농가에 재투자해 ‘부강한 농촌’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 이른바 1석 3조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대화면은 학생들의 도전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70여명의 주민 대부분이 70대 이상 노인들이라 농사일이 힘에 부쳤다. 게다가 밭도 농기계 사용이 어려운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 노동력 제공은 필수였다. 때문에 학생들은 8월 초부터 잡초 뽑기를 시작으로 밭농사에 뛰어들었다.
팥단이 건조ㆍ탈곡되는 이달 하순 무렵에는 수확한 팥 전량(약 1톤)을 공헌단이 구입할 예정이다. 구입가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도매가보다 값을 후하게 쳐줘 농가의 시름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학생들의 바람이다. 팥 구입은 봉사활동 지원비로 이뤄진다.
통상 농촌 지원 활동은 이 정도 선에서 끝난다. 그러나 학생들은 구매한 팥으로 찜질팩 1,000여개를 만들어 수익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팩 제작 역시 서울대 의류학과 재학생들의 재능 기부로 이뤄진다. 이렇게 완성된 찜질팩 절반은 지방자치단체 복지관과 연계해 독거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기부하고 나머지 절반은 학내외 장터나 기업 등에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대화면에 환원해 마을 환경 개선 및 농산물 구입에 쓰이도록 할 계획이다.
농민들은 손자ㆍ손녀 뻘인 대학생들의 제안을 기꺼이 반겼다. 40년째 대화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병소(63)씨는 “농작물을 제때 수확하지 못해 내다버리는 일이 허다했는데 판매도 해주고 농작물로 새 상품까지 만들어 준다니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대생들의 실험이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과 지식이 결합된 시도 자체가 침체된 농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서미향(21ㆍ여) 공헌단장은 “농사일을 돕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농작물로 상품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며 “상품 홍보와 판매 등 경제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우리에게도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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