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만4427명 목숨 끊어 OECD 평균 자살률 2배 넘어
'마지막 카드' 잘못된 인식에서 10대 소녀ㆍ노인 자살 특히 높아
자살에 너그러운 풍토 개선하고 연예인 등의 자살 보도 신중해야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자살자 40명.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숫자는 1만4,427명.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은 28.5명이었다. OECD 회원국의 인구 10만 명 당 평균자살률은 12.1명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자살률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된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자살 미화 풍토 문제…10대 소녀 자살도 심각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의 자살을 미화하는 잘못된 사회?문화적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조선시대 재가를 하지 않고 ‘수절’하는 것도 모자라 죽은 남편을 따라 스스로 ‘자결’하는 여성이 칭송된 사회?문화적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어 여성의 자살을 미화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투신한 효녀심청 이야기가 전래동화로 권장되고 있는데 사실 가족과 사회에서 자살을 강요한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미망인’이란 단어가 고매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사회통념이 여성들의 자살을 부지불식간에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또 다른 연령에 비해 유독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10대 여학생들의 자살과 관련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성인으로 가면 남자의 자살확률이 높은데 유독 10대에서는 여학생들의 자살률이 남학생과 거의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며 “이들 다수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어 가족 구성원의 관찰과 보살핌이 절실하다”고 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펴낸 ‘자살예방백서 2014’통계에 따르면 10대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자살생각과 자살시도 빈도가 높았다. 지난해 전국 중고생 400개교, 1,200개 학급을 대상으로 실시된 ‘청소년 건강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여학생의 20%는 자살을 생각했다. 남학생은 13%가 자살을 생각했다. 또 여학생의 5.5%는 자살을 시도해 2,8%에 불과한 남학생을 추월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여성의 자살률은 20대에 정점에 올랐다가 줄어들고 있다”며 “10대부터 자살생각과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이 많다는 것 자체가 사회,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홍 교수는 “자살예방 정책이 노인에 맞춰져 있어 청소년 자살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며 “보건복지부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과 긴밀히 협조해 청소년 자살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아직 유기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자살과 관련 보건당국의 대처가 미흡하다”며 “자살예방을 위한 애플리케이션도 없이 청소년 자살예방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한정된 예산으로 자살예방사업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노인에게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라며 “청소년자살 예방사업은 교육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진행토록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노인 암환자 자살에 “차라리 잘 죽었다”?
노인자살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의 경우 반드시 혼자 산다고 자살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살로 연결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박 교수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어차피 죽을 텐데 차라리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자살을 선택하는 노인이 많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70대의 10만 명 당 자살률은 91.7명이고, 80대 이상은 138.1명으로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박 교수는 또 “우리사회는 노인이 장수하다 노환으로 사망하면 ‘호상’이라고 하면서 암에 걸려 자살을 하면 어차피 살만큼 살았는데 치료를 받으며 고생하는 것보다 자살을 선택한 것이 났다는 식으로 자살을 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 경제적으로 노인을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노인자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살이 삶의 마지막 카드로 활용되는 것을 묵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박 교수는 “자살을 시도한 이들과 상담하면 사회적 경쟁에서 낙오가 됐을 때 다음 기회가 영영 없을 것이라는 현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며 “단순히 복지예산을 늘린다고 자살문제가 해결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치병에 걸리거나 일반인이 경쟁에서 이탈했을 때 자살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동의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살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자살방법 알려주는 친절한 보도삼가야
연예인 등 유명인사 자살과 관련 과도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미디어도 도마에 올랐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명인사의 자살과 관련된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자살법, 자살장소, 시간까지 자세히 알려줘 일반인이 이를 악용하고 있어 문제”라며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고위험군에 속한 이들은 반드시 영향을 받고 이를 학습해 자살을 시도하기 때문에 자살관련 보도를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모 방송국 드라마에서 주인공 남학생이 스크린도어가 없는 지하철 역사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 방영된 후 인터넷에서 그 역사가 어딘지 검색해 그곳에서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청소년들은 자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드라마, 영화 등에서 자살을 유도하거나 의미하는 선정적인 장면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종익 교수는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씨가 자살한 이후 3개월간 자살자가 전월 대비 60~80% 증가했을 뿐 아니라 같은 방법으로 자살한 비율도 늘어났다”며 “과도한 언론보도가 고위험군이 자살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데 영향을 주는 만큼 이에 대한 환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진실 씨가 자살수단으로 사용했던 ‘목맴’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자살자의 50%가 사용했다. 가스음독도 2009년 안재환 씨 자살 이후 자살방법이 미디어를 통해 상세히 보도된 후 4배 이상 급증했다.
가족살인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윤진 중앙자살예방센터 미디어정보팀장은 “우리나라는 가족살인도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며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는 자녀들을 죽이고 자살하는 이들을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미화하는 세태도 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살을 선택한 망자를 애도하되 이들이 선택한 방법이 정당화되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우리사회의 모순이 반드시 개선돼야 자살이 감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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