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를 끼고 타자기와 ‘007가방’을 든 스님들이 무대 위에서 실랑이를 한다. 고려 왕실의 부름을 받고 대중 앞에 나서려는 스님과 그를 말리는 다른 두 스님은 공동작업의 진행상황을 두고 갑론을박한다. 이들이 함께 진행하는 작업은 삼국유사 집필이다.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연극만발 프로젝트’ 네 번째 작품인 ‘유사유감’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하는 과정을 재해석한 코믹역사극이다. 연극은 일연의 다른 이름이었던 견명, 회연이 일연과 동일인물이 아닌 삼국유사를 함께 집필한 제3의 인물이라는 상상에서 시작한다. 이들이 의자왕, 김춘추, 원효 등 삼국유사 등장인물들로 분해 난상토론을 하는데, 삼국유사 집필과정에서 일연이 겪었을 갈등과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극에는 세 가지 시간적 배경이 등장한다. 승려들이 살고 있는 고려시대, 삼국유사의 시대적 배경이자 승려들이 역사 인물로 빙의하는 삼국시대, 그리고 삼국유사 집필의 진실을 캐려는 현대가 얽히고설켜 2중 극중극 구조를 구성한다. 그럼에도 극은 현실과 과거의 경계를 명확하게 분절시키지 않는다. 과거시대에 논쟁을 하던 승려들이 현대시대의 기자와 조우하고, 그들이 다시 삼국시대 인물들의 난상토론을 바라보는 등 시간의 경계를 계속 허문다. 그 장치로 극 초반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기 위해 스마트폰 벨소리를 활용하고 승려들의 옷차림도 현재적으로 했다. 박춘근 작가는 “과거의 이야기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일들이 2014년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극은 이 같은 동시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직설적 비유를 곳곳에 심었다. 김춘추와 의자왕이 백분토론 패널로 등장해 당나라 개입과 국익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민영화’, ‘퍼주기’, ‘복지’ 등 현대의 언어가 등장하는 식이다. 은유에 비해 세련미가 떨어짐에도 굳이 직유를 택한 이유에 대해 박 작가는 “‘젠 체’ 하고 싶지 않았다”며 “현대 일상의 언어로 극의 주제를 명확히 전달하려 했다”고 밝혔다. ‘유사유감’은 19일까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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