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11시 인천 송도 오크우드호텔 1층 로비. 북한 권력실세 3인방의 방문이 예고된 현장은 어수선했습니다. 기자들도 이들의 방문 사실을 당일 아침에야 통보 받을 정도로 관련 일정이 극비리에 진행된 탓에 현장에 다급하게 도착한 취재진들은 가쁜 숨을 내쉬었고 영문도 모른 채 객실에서 나왔다가 로비에 진을 친 수십대의 카메라를 보고 놀란 투숙객들은 “도대체 누가 오길래”라는 눈빛이었습니다.
5분 후 김양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등장할 때만 해도 고개를 갸우뚱했던 투숙객들은 잠시 후 나타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보고서야 ‘방문객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그가 어깨에는 ‘차수(次帥)’계급을 상징하는 왕별을 달고 머리에는 특이한 모양의 군모를 쓴 군복 차림으로‘나 북한에서 왔소’라고 광고하며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뒤따라온 최룡해 조선노동당 근로단체 비서의 등장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릴 만큼 그의 복장은 확 튀었습니다.
“체제 과시용이다”,“아시아인의 축제에 군복이라니, 외교적 결례다”, “군사적 위력의 표시다”,“북한 군부도 남북 관계 개선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상징적 신호다”,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군복 차림으로 기립했으니 남북 공존의 메시지다”
황병서의 군복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군부 2인자인 그의 군복 차림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진 겁니다. 군복 착용과 관련해 북한이 우리 정부에 사전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정부 역시 유감을 표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대응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김정은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황병서를 군복을 입힌 채로 보낸 걸까요? 남쪽 사람들의 반감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오랜 기간 북한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군 간부인 그가 군복을 입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양복을 입었다면 더 큰 ‘뉴스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군을 국가의 기본으로 여기는 선군정치(先軍政治)가 북한의 통치이념이기 때문입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당을 통한 통치’에 어려움을 느낀 김정일은 이듬해 군대를 앞세운 통치를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해 경제를 회복시키고, 군 조직을 통해 약화된 당의 사회통제 기능을 보완하면서 체제 안정을 꾀하려는 계산이었습니다. 이후 1998년 김정일 시대가 공식 출범하면서 헌법이 개정돼 국방위원회가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급부상했고 군부의 정치참여도 보장됩니다. 김정일 이름 석자에 따라다니는 ‘국방위원장’이란 직함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군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심이 된 만큼 군부 인사도 북한 정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2012년 7월 원수(공화국) 칭호를 부여 받은 김정은(국방위 제1위원장)에 이어 군부 2인자인 황병서(차수)를 김정은 정권의 2인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황병서의 직책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우리 정부로 치면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대통령 비서실장의 일부 역할을 묶어서 갖추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 14일 김정은이 41일만의 칩거를 끝내고 위성과학자주택지구 현지지도에 나섰을 때도 황병서가 가장 가까이서 그를 수행하며 비서실장 역할을 했습니다. 참고로 북한의 군 계급은 소장-중장-상장-대장-차수-원수-대원수 순으로 올라가는데 대원수 칭호를 받은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미 세상에 없고 빨치산 출신인 리을설(94)은 1995년 10월 김정일의 ‘원로 예우 정책’에 따라 원수(인민군) 칭호를 받은 세 명(오진우, 최광)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지만 별도 보직이 없어 실권도 없는 상태입니다.
어쨌든 황병서의 군복이 우리에겐 낯설긴 했지만 과거 전직 군부 2인자들이 특사자격으로 해외에 파견될 당시에도 종종 군복을 입었습니다. 2000년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조명록(사망) 국방위 부위원장은 클린턴을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군복으로 갈아입어 화제가 됐습니다. 이번에 양복을 입고 인천에 온 최룡해도 지난해 여름 총정치국장 신분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군복 차림이었습니다. 다만 중국 측 요구로 시진핑 주석을 만날 때에는 인민복으로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북한 군부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 주석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부가 정치에 적극 관여하며 권력을 움켜쥐는 북한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30년 가까이 군부독재를 경험한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그 경험이 치명적이었기에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헌법 5조 2항에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는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못 박았습니다. 군인 신분으론 정부 각료가 될 수 없기에 국방부 장관이 되려면 군복을 벗어야 하고 국방부 고위 간부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민간인이나 예비역만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군부 독재’와 결별했지만 북한에선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선군정치를 고수한 이상 국가 재정이 어려워도 주민의 생계보다 국방비 지출을 우선시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과 안보 위협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해결돼 체제가 안정화되지 않는 한 북한은 선군정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난 4일 선글라스 낀 경호원까지 대동한 ‘군복 입은 황병서’를 통해 그 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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