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해진 체육관의 실종자 가족, 하염없는 기다림과 응어리만
물품 지원 등 도움 손길은 줄고 진도 주민들은 인양 개시 요구
14일 오전, 진도 실내체육관은 고요했다. 6개월 전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 직후 수백명의 가족들과 또 수백명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울음과 고성을 토해내던 이 곳에는 지금 일곱 가족만 남아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아직도 팽목의 바다 50m 아래 있을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아팠다.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이불을 담벼락처럼 쌓아 놓고 그 속에서 웅크리고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부인 유백형(53)씨는 참사 당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체육관을 지켰다. 그는 가족들의 얼굴이 담긴 그림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온 몸에 암세포가 다 퍼진 느낌”이라고 했다. 곁에는 감기약, 소화제, 위궤양약 등 약 봉지가 한가득이었다. “체육관에서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을 맞은 것처럼 아파요. 남편 뼈라도 찾을 때까지 죽지 않을 만큼만 살아야죠.”
단원고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44)씨는 낯빛이 거멓게 변했다. 난치성 희귀질환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어 각별한 치료가 절실하지만 두 달에 한 번씩 서울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오는 게 고작이다. 박씨는 “내 딸은 차디찬 바닷속을 떠돌고 있는데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건강을 챙기겠느냐”고 되물었다. 일반인 실종자 이영숙(51ㆍ여)씨의 동생 영호(45)씨는 폐기종이 악화돼 폐의 3분의2를 잘라냈다. 그런데도 술에 의지해 잠을 청하는 날이 잦다.
실종자 가족들의 일상은 단출하다. 매일 오전 9시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진도군청에서 여는 회의에 참석하고 오후 5시 팽목항에서 수색구조 작업 브리핑을 듣는 게 전부다. 물론 알맹이 없는 브리핑을 듣는 날이 허다하다.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5)씨는 “회의에 다녀올수록 희망이 점점 사라진다. 새로운 소식 자체가 없다는 게 몸을 더 지치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병든 몸과 달리 가족들의 마음 한 켠에는 분노가 가득 자리하고 있다. 팽목항에서 가족들을 돕는 한 신부는 “수색이 장기화하다 보니 겉으로는 팽목항이 평온을 되찾은 것 같지만 구조 상황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가족들의 응어리는 더 깊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성태 자원봉사센터 국장은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의 1차 피해자인 동시에 지리멸렬한 수색 작업으로 상처 입은 2차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석 달째 들리지 않는 추가 시신 수습 소식은 가족들을 더욱 낙담케 한다. 7월 18일 3층 식당칸에서 조리원 이묘희씨의 시신을 찾은 것이 마지막이다. 이날은 마침 19호 태풍 ‘봉퐁’이 북상하는 중이었다. 거센 바람과 3m 이상 넘실대는 파도에 실종자 수색작업은 이미 9일부터 중단된 상태였다. 한 자원봉사자는 “바람이 잔잔하면 물살이 세고 물살이 잔잔하다 싶으면 바람이 세다”고 한탄했다. 이달 들어 수색 작업이 이뤄진 기간은 고작 5일로 다 합쳐도 17시간 55분에 불과했다.
현재 범대본은 잠수사 40명을 투입해 세월호 4층 선미 좌현 다인실(SP1)을 집중 수색하고 있다. 5월 말 “보름이면 수색을 마칠 것”이란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벌써 넉 달째 SP1과 사투를 하고 있다. 잠수사들은 한 번에 40분씩, 40m가 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 SP1 구역에 쌓인 부유물과 집기류, 뻘 등을 제거하고 있다. 하지만 바지선에 크레인을 고정할 수 없어 하루에 많아야 두 리어카 분량의 부유물을 제거할 뿐이다. 한 민간잠수사는 “이틀 동안 의자 20개를 내다 버린 게 전부”라고 자조했다.
어린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수장되는 걸 온 국민이 두 눈으로 지켜본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우리 사회의 후진성과 총체적 부실을 이번에는 개조해보자고 외쳤지만,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바뀐 것은 없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문제가 정쟁의 수렁에 빠져 민심은 조금씩 바뀌고 있고 그 여파는 팽목항에도 미치고 있었다. 황대식 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심신이 지친 데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 이후 가족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고 했다. 가족들을 돕던 손길이 줄고 있는 것은 눈에 띄는 변화다. 진도 실내체육관의 자원봉사를 총괄하는 장길환 팀장은 “물품 지원이 많이 끊겨 가족들이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들어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날부터 다시 약국 운영을 맡은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 최기영씨는 “소화제, 두통약 등 상비약은커녕 파스도 없어 가족들은 몸이 굳은 상태로 지내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또 생겼다. 5개월 이상 체육관에서 머물며 가족들의 법률지원과 대화 창구 역할을 도맡아 온 배의철 변호사가 9일 진도를 떠났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자 대한변호사협회가 가족 지원을 재논의하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대한변협 측은 법률지원서비스는 계속 하겠으나, 진도에 변호사가 상주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유가족만 세월호의 무게를 이겨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도 주민들 역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진도군 관계자는 “사고 이후 꽃게 축제 등 9개 행사가 줄줄이 취소ㆍ연기됐다가 9일 명량대첩 축제가 처음 열렸다”며 “4~7월 진도 관광산업 매출액이 작년과 비교해 80%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여파로 진도 해역 수산물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김병수 진도군꽃게통발협회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장소가 꽃게잡이 수역이어서 조업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예년에 비해 꽃게 출하량이 절반 가량 감소했다”며 “출하량은 줄었는데도 소비자들이 진도 수산물을 멀리해 꽃게 가격은 외려 하락했다”고 하소연했다.
실종자 가족들과 주민 사이의 앙금도 깊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공개적으로 수색 중단과 인양 개시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내년 4월 전남도민체전 개최 장소인 진도 체육관을 비워달라고 이미 가족들에게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가족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SP1 수색이 끝난 뒤 동절기에 대비한 수색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어 갈등 수위는 점점 높아지는 형국이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바다, 팽목은 여전히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세상은 변해 가지만 진도는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바지선을 15차례나 탄 유백형씨는 “이번엔 건질까 싶어 기대했다가 빈 손으로 올라오는 잠수사들을 보면 맥이 풀려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라며 “정부는 왜 진도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느냐”고 절규했다.
진도=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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