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 미국 사회가 ‘집단 패닉’상태에 몰리고 있는데도 미국 정치권은 에볼라 공포를 정파적 이익에 활용하고 있다. 냉정한 분석보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기회로 활용하거나, 대안도 없이 논리에 맞지 않는 막무가내 주장으로 보건 당국을 몰아세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제작ㆍ배포한 뉴스영상을 통해 “정치인들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에볼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분짜리 이 영상물에 따르면 공화ㆍ민주당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상륙하게 된 원인을 상대방에 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무분별한 예산 삭감으로 2010년 이후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예산이 5억8,500만달러나 감축됐다”는 영상물을 11월 중간선거 주요 접전지에서 내보내고 있다. 공화당도 이번 사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잘못된 리더십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에볼라 공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주 단순하다. 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다음 달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를 호소했다.
대중의 불안감과 공포심에 영합하는 근시안적 주장도 횡행하고 있다. 공화당 1인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에볼라 발병 국가에서 출발한 항공기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공개 촉구했다. 그는 “우리 항공여행시스템의 보안(허점)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에볼라 창궐국의 미국 여행 임시금지 조치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하원 청문회에서도 톰 프리든 CDC 소장에게 “에볼라 최초 발생지인 서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여행금지를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부 의원들은 또 ‘사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프리든 소장을 몰아 세웠다.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데이빗 로스너 컬럼비아대 교수는 “(여행금지 요구를 거부한) 프리든 소장의 해법이 맞다”고 평가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서아프리카 항공기 입국 거부 주장에 대해, “국경을 폐쇄하자는 것은 집이 불타고 있는데 방 안에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문틈에 젖은 수건을 끼우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불은 끄지 않으며 번지기 마련”이라며 “에볼라 공포가 확산 돼서 국경을 폐쇄하게 된다면 우리는 핵심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치명적 전염병이 번질 때에도 미국인들이 줄곧 정파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인 오바마 행정부의 에볼라 대응에 대해 민주당 성향 응답자는 76% 지지했으나, 공화당 성향의 비율은 54%에 머물렀다. 반면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했던 2006년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에서는 공화당 성향의 지지율은 72%에 달했으나 민주당 지지자의 비율은 52%에 불과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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