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기업 홍보·행사 진행 도와, 사전 안전교육 받은 사람 전혀 없어
무대 애초 환풍구 등지도록 추진, 이데일리, 관객 더 동원하려 변경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당시 공연장에는 관람객들의 안전을 책임질 안전요원이 단 1명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연계획서 상에는 4명의 안전요원이 지정돼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이 안전요원인 줄도 몰랐다. 공연장 무대도 당초 사고가 난 환풍구를 등지고 설치되기로 했다가 관람객들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위치를 변경해 사고의 빌미를 제공했다.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원인과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19일 오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하 경기과기원)과 이데일리 본사 등 10여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관련자 6명도 출국금지 조치했다.
안전요원 ‘서류에는 4명, 실제는 0명’
경찰은 공연장에 안전요원이 배치됐는지 여부를 수사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가 난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에는 행사 주최자인 경기과기원에서 16명, 주관사인 이데일리 9명(사회자 2명 제외), 이데일리와 계약을 맺은 외주 행사업체 플랜박스 11명 등 모두 36명의 행사 관계자가 현장에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안전요원은 단 1명도 없었다. 경기과기원측 관계자들은 대부분 공연장 인근에 마련된 홍보전시관에서 기업홍보 업무를 하고 있었고 이데일리와 플랜박스측 행사요원들은 무대주변 정리와 행사 진행 보조활동 등을 맡고 있었다.
경기과기원이 사전에 경찰에 제출한 행사계획서에는 경기과기원 소속 직원 4명이 안전요원으로 명시돼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들이 안전요원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 36명 가운데 사전에 안전요원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사고 당시 목격자들도 “환풍구 주변에는 사고 후에도 안전요원은 보이지 않고 행사 진행요원들 3~4명만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기과기원이 안전요원 허위 기재
경찰은 안전요원 배치의 일차적 책임이 주최자인 경기과기원에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주관사가 행사 진행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이데일리의 책임도 없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행사계획서에 왜 안전요원을 허위로 기재했는지, 경기과기원과 이데일리, 플랜박스가 어떤 내용의 계약을 맺었는지를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행사계획서를 작성하고 행사를 진행한 경기과기원 오모(37) 과장이 지난 18일 새벽 1시간20분 가량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판교 사무실 옥상에서 투신 자살함에 따라 경찰이 책임 소재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경찰은 이날 오전 수사관 60여명을 투입, 이데일리 본사 등 10여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경기과기원과 이데일리, 플랜박스간에 맺은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계약서 등 관련 서류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오 과장이 작성한 계획서가 경기과기원의 판단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이데일리나 플랜박스의 계획을 대신한 것인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질 수 있어 관련 서류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압수한 물품을 분석하려면 3~4일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그 이후에나 수사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연장 무대 위치 변경도 사고 ‘화근’
주관사인 이데일리가 당초 예정된 무대 위치를 바꾼 것도 결과적으로 사고의 원인이 됐다. 사고가 발생한 환풍구는 공연 무대에서 30여m 떨어져 있었지만 지상보다 2m 정도 높아 비교적 공연을 보기에 좋은 자리였다. 이 때문에 공연장 자리를 잡지 못한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환풍구에 올라가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무대 제작 등을 책임진 플랜박스는 당초 공연 무대가 환풍구를 등지도록 만들기로 했지만 10월초 현장을 둘러본 이데일리측이 요구로 무대 위치가 변경됐다. 환풍구를 등지게 될 경우 공연무대가 건물을 바라보게 돼 많은 관람객들이 올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무대 위치를 변경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처벌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환풍구를 전혀 통제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공연 무대가 바뀌지 않았다면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현재 상태로 봤을 때 무대를 변경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처벌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다른 변경 이유가 있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최마저 불명확한 막무가내 행사
경찰은 ‘주최자’ 무단 명기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행사 주최자로 확인될 경우 피해 보상 등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과기원 김모 본부장은 경찰 조사에서 “성남시가 이데일리에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받았고, 경기과기원이 경기도 산하기관이란 점을 고려해 공동 주최자로 경기도와 성남시를 명기하기로 하고 사업계획서를 결재했다”고 진술했다. 경기도는 “이데일리가 보낸 공문이 도에는 접수되지 않았다”며 경기과기원의 결재임을 밝혔다.
이데일리측은 성남시로부터 1,000만원을 지원받기로 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성남시측은 이데일리에 지원을 할 계획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무단으로 성남시를 주최자에 포함시켰다고 반발하고 있다. 성남시는 “이데일리로부터 3,000만원 협찬 요청을 공문으로 받았지만 거절했고, 지난 15일 행사와는 무관한 광고예산으로 이데일리에 1,100만원을 집행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성남=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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