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토익 등 고스펙 갖춰도 "어렵겠네요" 번번이 좌절만
취업률 이공계 반토막도 안 돼 "전공이 족쇄 될 줄…" 한숨
“이대로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취업회전문’을 빙빙 돌다 20대가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임용희(26ㆍ여)씨는 서울 소재 사립대학 졸업에 학점 4.0, 토익 930점, 일본 교환학생, 인턴이라는 일명 ‘취업스펙 5종’을 갖췄지만 아직도 취업준비생이다. 대기업을 준비하다 공무원 임용시험으로, 낙방할 경우 중소기업으로 돌아서는 인문계 대졸자들의 취업회전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임씨는 박물관 학예사가 되고 싶었지만 일찌감치 꿈을 접었다. 대학원 진학이 필수인 데다 결원이 생길 때마다 채용하는 방식이라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대기업 취업에 도전해 100여 차례 지원서류를 썼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나마 대기업 여성 취업나이의 마지노선이라는 26살이 된 올해는 서류 통과 횟수도 반으로 뚝 떨어졌다.
나이제한이 없는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지만 치솟은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릴 염치가 없어 이제는 중소기업이나 계약직이라도 닥치는 대로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 임씨는 “고등학교 때 하라는 대로 공부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대학에 입학했고, 4년 간 취업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뭘 잘 못해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면접에서 ‘그런 과는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인문계 학과를 운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울먹였다.
인문계 대졸자들이 취업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인’문계 졸업생은 ‘구’십 퍼센트(%)가 ‘론(논)’다는 의미의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김모(27)씨는 “나도 놀고 동기도 놀고, 선배도 놀고 있으니 인구론이란 말이 과장은 아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같은 기업에 세 번이나 입사원서를 내기도 했던 취업삼수생 김씨에게는 국문학이라는 전공이 번번이 족쇄다. 서류통과 자체가 어렵고 겨우 면접에 가도 ‘왜 인문계를 전공했느냐’며 찬밥 취급을 한다. 올해 상반기 졸업한 김씨의 과 동기 64명 중 취업을 한 사람은 단 12명이다. 취업률이 겨우 18.7%라 ‘인구론’이 거의 들어맞는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2월 국내 4년제 일반대 졸업생의 건강보험 연계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 인문계의 취업률은 이공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계적으로는 아직 인구론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았지만 인문계 국어국문학과의 취업률은 37.7%, 인문교육학과는 25.8%였다. 반면 이공계는 해양공학과가 77.4%, 기계공학과 71.7% 등으로 큰 격차를 보였다.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중 이공계 출신이 많은 기업도 62개다. 기업규모가 크거나 제조업인 경우 이공계 출신이 더 많고, 얼마 전까지 인문계 출신을 우대했던 경영이나 영업분야도 이제는 이공계 졸업생들을 선호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만성화된 불황으로 경영환경이 나빠지면서 당장 성과나 수익을 낼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다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활용도가 높은 이공계를 인문계 직무에 배치하는 추세”라 전했다.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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