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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들어서면 주민 다 떠나는데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입력
2014.10.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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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풍경 살아있는 성북구 정릉골...20년 전부터 재개발 소문만 무성

경관관리지역 시범사업 선정됐지만 아파트 원하는 주민 반대 무산되기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뻔한데...구청에 재개발팀 꾸려 선거 관리

비현실적 공약 속 추진위 구성돼...분담금 등 논란 구청장 고발까지

길 넓히고 도시가스 연결해주면 동네도 사람도 다 지킬 수 있는데...가난한 사람 내쫓는 일에만 몰두

정릉골의 김영창씨 집. 나무시장에서 산 머루덩굴로 대문을 장식하고 감나무도 사다 심었다. 뭐든 제값 치르고 사는 그라면 새로 집 지을 비용을 융자해주면 틀림없이 갚을 것이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도시기반시설을 왜 안 해주는가.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정릉골의 김영창씨 집. 나무시장에서 산 머루덩굴로 대문을 장식하고 감나무도 사다 심었다. 뭐든 제값 치르고 사는 그라면 새로 집 지을 비용을 융자해주면 틀림없이 갚을 것이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도시기반시설을 왜 안 해주는가.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서울 성북구 정릉 3동,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낡은 집들이 펼쳐져 있고 사이 사이 국화가 피어 있다. 건너다 보이는 집집 마당은 물론 골목 사이 빈 땅에도 감나무와 오가피나무, 머루덩굴 배추밭과 무밭이 오밀조밀 자리잡고 있다.

마을에서 개울을 건너면 나오는 버스종점에서 143번 버스를 타면 서울대병원까지가 23분, 종로2가가 30분 거리.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는 촌락이다. 실제로도 수도 전기는 들어오지만 도시가스가 안 들어와서 시골마을과 매한가지이다. 2003년까지 국립공원 구역이었다. 그 때문에 건너편 정릉4동은 개울에 바짝 붙어서까지 고층아파트가 지어졌지만 이곳은 개발의 손때가 전혀 안탄 1960년대 전원풍경이 살아있다.

‘정릉골’이라 불리는 이곳은 청계천 북아현동 등의 무허가주택 철거로 옮겨온 이들이 구성한 무허가촌이 바탕이 됐다. 96년 무허가주택 양성화에 따라 주민들이 국유지를 불하받아 등기 있는 자기 집을 갖게 되었다. 20여년 전부터도 재개발이 된다, 안된다로 들썩거리면서 한때는 땅값이 평당 1,300만원까지도 올랐다지만 지금은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재개발 바람’이 불 때마다 아파트 건설비를 댈 수 없는 토박이들이 집을 팔고 떠나버려서 지금 남아있는 토박이는 전체 636 가구의 3분의 1 정도. 그런데 다시 이곳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오면서 이곳을 지켜온 토박이들이 집을 잃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올 2월에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재개발조합이 구성될 길이 열렸다. 성북구청에는 아예 전담하는 재개발팀이 구성되어 재개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 올 2월에 구성된 재개발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선거는 구청이 관리를 맡았으면서도 불가능한 공약사항을 제시한 후보들에 대해 전혀 제재를 하지 않아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추진위원장과 성북구청장, 주거정비과장 등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서울북부지검에 고발한 상태이다.

“들어온 지 40년 넘었어요. 아파트에는 못 살아요. 1억, 2억씩 들어간다는데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여기 (구릉지라서) 아파트 짓지도 못하고 아파트 건설하면 타산도 안 맞고 재개발 성공한 데를 못 봤어요. 아파트 들어서면 원래 살던 사람은 다 떠나잖아요. 그런데 왜 재개발을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도시가스나 넣어주고 집 고칠 수 있게 융자나 해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기름값이나 연탄값이나 비슷해서 기름보일러로 들였더니 20평 밖에 안되는 이 집에 기름값이 겨울이면 100만원 넘게 나와요.”이곳에서 부부가 1남2녀를 키워 취직까지 다 시켰다는 김영창(70)씨 말이다. 시멘트 벽돌로 벽채를 세우고 슬레이트 지붕을 한 그의 단층집은 단열이 약해서 그 정도 난방비라면 매우 춥게 산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목돈은 없어도 애들이 취직했으니까 도시가스 넣어주고 집을 제대로 지을 돈을 장기저리 융자를 해주면 천천히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마을만들기’로 이 마을이 지정됐으면 한다는 말이다.

^두 살 때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곽병로(53)씨는 스웨터 점퍼 다 입고서 동파가 안될 정도로 기름보일러를 틀어놓고 살았는데도 지난 겨울에 기름값이 20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했다.

우삼순(71) 박덕엽(68)씨 부부는 남편 우씨가 60년대 말에 목포에서 올라와 이곳에 정착했다. 96년 국유지를 불하 받으면서 원주민에게는 바닥면적 30평을 2층으로 지을 수 있다는 정책을 활용해서 벽채가 튼실한, 집다운 집을 지었다. 우씨는 “주민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도시를 위한 개발을 하니까 토박이들은 쫓겨나서 빈민이 되는 것 아니냐”며 “우리도 낼 세금 다 내는데 왜 이 동네에는 도시가스를 안 넣어주는지 모르겠어요. 도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마을버스가 간신히 큰 길로만 다녀요. 소방차도 못 들어와. 집은 우리가 고쳐서 살 테니 제발 시민답게 살만한 동네를 만들어줘요”고 했다. 부인 박씨는 “여기는요, 수 십 년씩 같이 사는 이웃이라 누가 아프면 다같이 병원에 달려가고 함께 김장 담고 다달이 모임도 있어요. 없는 사람 살기 진짜 좋은 동네에요. 마을 만들기 마을 만들기 그러는데 일부러 마을을 만들 게 아니라 재개발로 마을이 없어지는 거나 막아줘요”라고 말했다.

반면 이름을 밝히지 않는 여성주민(82)은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아무 것도 몰라요. 젊은 사람들(자녀들)이 알아서 한다고 해서 (재개발 추진위에 찬성) 했는데 (재개발은) 몇 십 년 전부터 된다고 해도 어디 되나요?”라고 말하고는 꽃 가꾸던 일로 돌아가버렸다. 재개발 말만 돌지만 여전히 똑같이 살아오는 판이니 이제는 자녀들에게 선택을 맡겨두었다는 말이다.

살던 동네를 싹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대변되는 재개발이 성공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이다. 용적률이 늘어나서 살던 공간보다 여러 채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지은 아파트가 남김없이 분양되어야 한다. 그래야 원주민으로 구성된 조합원들이 아파트 분양으로 생기는 수익을 나눠가져서 아파트 건설에 들어간 비용을 벌충한다. 아파트가 남김없이 분양되려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서 그 아파트에서 살 생각이 없는 사람도 투기용도로 사두는 방법 밖에 없다. 이 지역의 특성으로는 용적률이 늘어날 수 없고 아파트가 남김없이 분양되는 일은 한국의 경제상황으로 불가능하다.

이곳은 2008년 특별경관관리지역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건축가 조성룡씨의 도시건축사무소를 비롯한 3개 업체가 정비계획 용역사업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1종 주거지역의 특성을 맞춰 4층 이하의 공동주택으로 개발하는 안이 나왔지만 용적률 107.33%라 수익성이 없는데다 주민들이 고층아파트형 재개발을 고집하면서 무산되었다. 조성룡씨는 “컨테이너하우스를 짓고 상주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해봤지만 고층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 설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고층아파트 단지 자체가 지역을 섬처럼 만들기 때문에 나쁘지만 이곳에서는 특히 아름다운 경관을 파괴하는 것이라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며 “당시 주민들의 의견을 절충해서 저지대에는 8층 정도의 아파트를 짓고 고지대는 더 낮은 집을 지어 평균 4층으로 하자는 안까지 나왔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올해초 구성된 재개발추진위원회가 구상하는 안 역시 평균 4층이라고 김기억(63) 추진위원장은 밝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역 모형을 심의하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허용하는 안이 용적률 114% 이하, 평균 4층 이하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의 같은 면적으로 연립주택(빌라)을 새로 짓는 셈이라 이런 재개발이 이뤄지면 주민들은 새 집을 짓는 비용을 내야 한다. 재개발추진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의 허만선(54) 위원장은 “이 내용을 토대로 작년에 구청에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33평 땅을 가진 주민이 33평형 빌라를 받으려면 분담금 2억2,000만원을 내야 한다고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그런데도 재개발추진위원회 선거에서 위원장으로 입후보한 이들은 전부 분담금 없는 재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선거를 구청에서 관리하면서도 거짓공약을 아무도 막지 않았다. 구청이 관리한 선거에 나온 내용이니까 주민들은 분담금 없이 재개발이 가능한 줄 알고서 찬성했을 것이다”고 추진위는 물론 구청까지 비판했다.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생기면 2년 이내에 75%의 주민지지를 받아 재개발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주민 30%가 연명해서 반대하면 되게 서울시가 한시적인 규정을 만들어놓았으나 실제로는 구청 단위에서 이리저리 틀며 성사가 안 되는 것이 현실.(서화숙의 집 이야기 2회, 3회 참조) 일단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생기면 재개발조합이 들어서는 방향으로 간다. 재개발 추진위나 조합 상태에서 마구 써버린 돈은 조합원들이 나눠 갚지 않으면 해산도 어렵다. 매몰비용으로 불리는 이 돈은 조합단계에서 수십억원을 넘어선다. 물러서고 싶어도 매몰비용을 갚지 못해 추진위나 조합을 해산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서 70%는 지방정부가 물어주는 것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최근에 바뀌었다. 대신 지방정부의 재정이 열악하므로 실질적으로는 시공사인 건설기업의 법인세를 삭감해주는 방안으로 하기로 했으나 이 부분은 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따라서 현재 실정에서 재개발이 이뤄지면 분담금 부담 때문에 부자 아니면 살기 힘들고 재개발이 불발되면 실패의 부담을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떠맡는다.

그런데도 이런 재개발을 추진한다는 김기억 추진위원장은 “‘분담금이 없는 재개발’이 아니라 ‘분담금 걱정이 없는 재개발’이라고 공약에 밝혔다”고 말장난 같은 해명을 하면서 “설계안에 따라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만 했다.

성북구청 재개발팀장은 “선거 시점에서 사실과 다른 것은 알고 있었으나 구청이 그것까지 개입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종 상향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 종상향 가능성은 있느냐고 주거정비과장에게 묻자 “주민이 요청하면 서울시에 요청할 뿐 결과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일은 구청이 저지르고 책임은 서울시로 넘기겠다는 말이다.

도로를 넓히고 도시가스를 넣는 기반시설은 서울시가 맡아 하고 개인의 주택 개선은 장기저리융자(연리 2%, 최대 8,000만원)를 통해 하는 ‘마을만들기’사업으로 이 마을을 지정하는 일은 왜 안될까. 주거정비과장이 말한다. “그 꼭대기 가보셨어요? 그렇게 허름한 집인데 (거기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고칠 능력이 있겠어요?”

이런 식이라면 가난한 사람은 쫓겨나고 아름다운 구릉은 파괴되어 고층아파트가 지어지지만 분양은 안되어서 텅 비어버리고 조합원들 모두가 파산지경에 이르는 방법만이 대안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공무원은 왜 공무원이고 지방정부는 왜 정부일까.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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