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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해준 밥'은 육아빠를 춤추게 한다

입력
2014.10.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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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이 줄었다. 꽉 껴서 입기 불편하던 옷도 다시 꺼내 입게 됐고, 허리띠 맨 안쪽에다 구멍을 하나 더 내지 않으면 바지는 흘러내릴 판이다. 육아가 힘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외식이 크게 줄고 특히, 삼시세끼 중 가장 찬란한 칼로리를 자랑하는 ‘저녁’ 자리가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명 환영할 일일 텐데, 그렇지도 않다. 남이 차려주는 밥 생각 날 때가 많고, 설거지가 싫은 날엔 외식, 외식, 외식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 거의 매일 같은 밥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이렇게 먹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아들용 무염 저염 반찬은 다양하게, 따로 있다. 이틀에 한번 싹 바뀌는!) 평소 손 잘 가지 않던 멀티비타민이 눈에 잘 띄는 식탁 위로 자리잡은 것도 최근 일이다.

면발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해 찾은 단골 비빔국수집. 아들을 위해 친히 주문한 잔치국수였는데 아들은 그걸로 정말 ‘잔치’를 했다.
면발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해 찾은 단골 비빔국수집. 아들을 위해 친히 주문한 잔치국수였는데 아들은 그걸로 정말 ‘잔치’를 했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아내의 월급날, 보너스 날을 즈음한 ‘오늘 저녁은 외식!’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외식이 사전 공지되면 그 순간부터 금식에 들어갈 정도다. 나의 이 행동을 두고 “돈이 없나, 시간이 없나, 뭐 그런 걸로 ‘남자의 평균치(?)’를 깎아 먹나!”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애들이 어릴 때 밖에서 독대 식사를 해보지 않았거나, 애 키우던 시절 기억이 머리에 없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어린 아들과의 외식은 전쟁이다. 상당한 민폐도 유발한다. 이동 중이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아들과 밖에서 식사를 몇 차례 한 적이 있는데 ‘죄송한데 애기 숟가락 하나만’을 최소 두 번씩은 한 것 같다. 손님이 식당 종업원한테 그 정도야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아들이 흘리고 투척한 음식으로 주변 바닥이 난장판이 되고 보면 새 숟가락, 냅킨 좀 더 달라는 이야기는 읍소를 해야 할 지경이다. 식사를 마치면 테이블 정리도 좀 하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한데 모아놓고 나와야 귀가 덜 가렵고 뒤통수가 덜 아프다.

집 밥이 싫어 찾은 한 스시집에서 식사 중인 아들의 식탁 아래 모습. 식사를 마칠 쯤이면 오염(?) 면적은 저보다 몇 배 넓어진다. 종업원이 치우기 쉽도록 한데 모아놓고 나와야 그나마 마음이 덜 불편하다.
집 밥이 싫어 찾은 한 스시집에서 식사 중인 아들의 식탁 아래 모습. 식사를 마칠 쯤이면 오염(?) 면적은 저보다 몇 배 넓어진다. 종업원이 치우기 쉽도록 한데 모아놓고 나와야 그나마 마음이 덜 불편하다.

남이 차려줬다지만, 막상 테이블에 앉으면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무르고 던지고 얼굴에 머리에 칠을 하는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노라면 내가 아들을 먹이는 건지, 아들이 나를 먹이는 것인지, 그야말로 음식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를 정도다. 이 와중에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거의 묘기에 가깝다. 평소 먹던 것의 절반 정도만 먹고 나와도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해야 된다. (36개월 미만 아이는 무료라고 해서 좋아할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어른이 그만큼 못 먹으니 그게 그거더라.)

사정이 이러하니 아내의 외식 계획 발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육아와 가사로 고생하는 남편의 영양 보충 외에도 ‘아들은 내가 볼 터이니 편하게, 자유롭게, 마음껏 드시라’의 뜻이 있다.

사실 나는 먹는 일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다. 그냥 배만 채우면 된다는 주의다. 혼자일 땐 라면이나 김밥 한 줄로도 충분하다. 맛집을 찾아가고 맛나는 커피숍을 찾아 가는 일도 대부분 동행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였을 뿐이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행위가 그토록 큰 즐거움과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육아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깨달을 수 있었을까. “넬슨 만델라가 그랬답니다. 감옥에 있다 나오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라고.”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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