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이 줄었다. 꽉 껴서 입기 불편하던 옷도 다시 꺼내 입게 됐고, 허리띠 맨 안쪽에다 구멍을 하나 더 내지 않으면 바지는 흘러내릴 판이다. 육아가 힘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외식이 크게 줄고 특히, 삼시세끼 중 가장 찬란한 칼로리를 자랑하는 ‘저녁’ 자리가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명 환영할 일일 텐데, 그렇지도 않다. 남이 차려주는 밥 생각 날 때가 많고, 설거지가 싫은 날엔 외식, 외식, 외식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 거의 매일 같은 밥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이렇게 먹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아들용 무염 저염 반찬은 다양하게, 따로 있다. 이틀에 한번 싹 바뀌는!) 평소 손 잘 가지 않던 멀티비타민이 눈에 잘 띄는 식탁 위로 자리잡은 것도 최근 일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아내의 월급날, 보너스 날을 즈음한 ‘오늘 저녁은 외식!’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외식이 사전 공지되면 그 순간부터 금식에 들어갈 정도다. 나의 이 행동을 두고 “돈이 없나, 시간이 없나, 뭐 그런 걸로 ‘남자의 평균치(?)’를 깎아 먹나!”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애들이 어릴 때 밖에서 독대 식사를 해보지 않았거나, 애 키우던 시절 기억이 머리에 없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어린 아들과의 외식은 전쟁이다. 상당한 민폐도 유발한다. 이동 중이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아들과 밖에서 식사를 몇 차례 한 적이 있는데 ‘죄송한데 애기 숟가락 하나만’을 최소 두 번씩은 한 것 같다. 손님이 식당 종업원한테 그 정도야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아들이 흘리고 투척한 음식으로 주변 바닥이 난장판이 되고 보면 새 숟가락, 냅킨 좀 더 달라는 이야기는 읍소를 해야 할 지경이다. 식사를 마치면 테이블 정리도 좀 하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은 한데 모아놓고 나와야 귀가 덜 가렵고 뒤통수가 덜 아프다.
남이 차려줬다지만, 막상 테이블에 앉으면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무르고 던지고 얼굴에 머리에 칠을 하는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노라면 내가 아들을 먹이는 건지, 아들이 나를 먹이는 것인지, 그야말로 음식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를 정도다. 이 와중에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거의 묘기에 가깝다. 평소 먹던 것의 절반 정도만 먹고 나와도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해야 된다. (36개월 미만 아이는 무료라고 해서 좋아할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어른이 그만큼 못 먹으니 그게 그거더라.)
사정이 이러하니 아내의 외식 계획 발표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육아와 가사로 고생하는 남편의 영양 보충 외에도 ‘아들은 내가 볼 터이니 편하게, 자유롭게, 마음껏 드시라’의 뜻이 있다.
사실 나는 먹는 일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다. 그냥 배만 채우면 된다는 주의다. 혼자일 땐 라면이나 김밥 한 줄로도 충분하다. 맛집을 찾아가고 맛나는 커피숍을 찾아 가는 일도 대부분 동행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였을 뿐이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이 단순한 행위가 그토록 큰 즐거움과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육아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깨달을 수 있었을까. “넬슨 만델라가 그랬답니다. 감옥에 있다 나오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라고.”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