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외동딸 잃은 부모 오열, 기운 없어 조문객과 맞절도 못해
수업 마치고 온 생존 학생 40여명 "더 좋은 곳에 가서…" 눈물로 배웅
화사하게 꽃 피던 4월의 봄날,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현(17) 양이 찬바람 부는 늦가을 차가운 몸이 돼 가족과 친구들이 기다리는 안산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사고 발생 198일만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295번째 희생자로 발견된 지현 양의 빈소가 30일 오후 고대안산병원 장례식장 201호에 마련됐다. 교복을 곱게 입은 지현 양의 영정 앞에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은 아버지 황인열(51)씨와 어머니 심명섭(49)씨가 나란히 섰다.
진도 팽목항에서 군용 헬기로 지현 양과 함께 안산까지 온 황씨는 늦둥이 외동딸의 영정 앞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이기지 못한 채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게 보내려고, 너를… 이렇게 가면, 이렇게 가면….” 황씨는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천장을 보며 울음 섞인 절규를 토해냈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어 지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지현 양의 부모는 지난 28일 시신 발견 후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이틀 동안 노심초사하며 보낸 탓인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장례를 돕고 있던 한 생존학생 가족은 “너무 오랜 시간 딸을 기다려서인지 지현이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면서 “조문객들과 맞절을 할 힘도 없어 서서 목례로 대신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빈소 한 쪽에는 ‘잊지 않을게 돌아와줘서 고마워. 단원고 2학년 친구들’이라고 적힌 조화가 먼저 지현 양을 맞았다. 오후 5시쯤 수업을 마친 단원고 생존 학생 40여명이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애써 눈물을 참았던 학생들은 “와줘서 고맙다”는 지현 양의 어머니 말 한마디에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너희가 지목해 준 곳에 지현이가 정확히 있었어. 정말 고맙다”고 황씨가 생존 학생들을 부둥켜 안고 감사를 표했지만 학생들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함께 살아오지 못한 미안함을 전했다.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지현양은 집에서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다이어트 한다고 투정도 부렸던 애교 많은 여고생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행여 부모에게 부담이 될까 미술 전공은 하지 않겠다고 했던 속 깊은 딸이기도 했다. 다이어트 때문에 한 달에 한 번만 라면을 먹기로 하며 참아왔던 딸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어머니는 진도 팽목항에 수 차례 라면을 끓여 내놓기도 했다. 빈소를 찾은 한 친척은 “하늘이 꽃도 피워보지 못한 아이를 이렇게 원통하게 데려가셨다”며 “법 없이도 살 황씨 부부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애지중지 키웠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가족은 조의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문객들이 지현 양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도록 빈소에 메모 게시판을 설치했다. 조문객들은 메모판에 “더 좋은 곳에 가서 편안히 푹 쉬거라” “지현아 보고 싶다.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 사랑해 미안해”라는 글을 남기며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지현 양은 사고 발생 200일째 되는 날인 다음 달 1일 오전 8시 발인돼 수원 연화장에서 한줌 재가 돼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안장된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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