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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으로 추진된 재개발 막으려고 주민들 생돈 들여 재판 중

입력
2014.11.0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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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산시 합포구 반월동ㆍ문화동

구역지정 없이 만든 조합추진위

대법서도 무효라고 판결 났지만

市에선 재판 중에 구역 고시하고

판결 3주 만에 추진위 재구성 돼

"소방도로ㆍ집집엔 심야전기보일러

잘 정비된 도시마을 왜 재개발 하나"

주민들, 2심 결과 기다리며 울분

소방도로까지 나고 심야전기로 난방비도 별로 안 드는 멀쩡한 주택가를 헐고 아파트단지를 세운다는 재개발은 주민동의서를 위조하면서 강행된다. “저거들이 내 재산을 왜 맘대로 하노. 너무너무 분해서 모이라면 1등으로 나간다.”
소방도로까지 나고 심야전기로 난방비도 별로 안 드는 멀쩡한 주택가를 헐고 아파트단지를 세운다는 재개발은 주민동의서를 위조하면서 강행된다. “저거들이 내 재산을 왜 맘대로 하노. 너무너무 분해서 모이라면 1등으로 나간다.”

“즈그들이 똑 같은 값으로 갈 집을 찾아주면 내 좋다 한다. 근데 이 돈으로 어디 가서 집을 찾노. 맨 거짓뿌렁이다.” 김한수(80 여)씨.

창원시에 통합된 옛날 마산시 합포구 반월동 문화동의 반월재개발지역. 번듯한 단독주택과 허름한 단독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곳 3만평 남짓한 지역도 역시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씨는 환갑이 된 딸이 돌이었을 무렵 이 동네로 이사 왔다. “시장 가깝지 교통 편하지 어디든 파면 물(지하수) 나오지” 살기가 참 좋았다. 흙집을 짓고 살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집으로 바뀌었고 17년 전에 지금의 2층집을 지었다. 2006년에 재개발 바람이 불 때는 재개발조합설립 추진위 설립에 도장도 찍어줬다. 작은 아들이 와서 ‘헌 집 주고 새 집 준다니까 동의해주라’고 말했다. 32평인 김씨의 집을 주면 똑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준다고 했다. 몇 달 뒤 동네가 어수선해서 이웃들한테 물어보니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집 감정가가 싸서 아파트 들어가려면 평당 몇 백만원씩 더 내야 한다고 했다. 32평이면 2억은 더 내야 한다. “이 돈 주고 쫓가내면(쫓아내면) 나가 죽으라는 말 아이가(아니냐).”그래서 반대에 나섰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여서 추진위에도 항의하고 시청에도 항의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가 찬성을 한 사람들인지 알아보려고 해도 시청은 정보를 주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이 기댈 것은 재판 뿐이었다. 2007년에 마산시장을 상대로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설립승인 무효 확인소송을 걸었다. 재개발사업은 재개발 구역을 먼저 지정하고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구역지정도 안된 상태인 2006년 2월에 조합설립추진위원회부터 만들었다는 절차를 문제 삼았다. 2008년 6월 창원지법으로부터 주민들이 이겨서 추진위 설립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해 12월 9일 대법원 판결로 확정도 됐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은 채, 지방정부의 엄호를 받으며 절차조차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이뤄지는 재개발 사업에 딴지가 걸렸다. 이 판결이 나자 같은 마산의 자산동과, 멀리 원주시의 재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이 절차의 문제를 들어 재개발조합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걸었다. 무분별한 재개발이 멈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런데 마산시는 1심이 진행중인 2008년 1월에 이곳을 뒤늦게 재개발정비구역이라고 고시했다. 동네에는 이전과 거의 같은 사람들이 다시 재개발조합설립 추진위를 만들어서 12월 5일 시청에 인가신청을 했다. 이전 추진위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이로부터 나흘 뒤에 났지만 대법원 판결 뒤 21일만인 12월 30일 새로운 재개발추진위가 마산시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2010년 8월에는 이 추진위로부터 생겨난 재개발조합이 시청 승인을 받았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종전과 다를 바 없지만 합법성을 획득한 새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2010년 조합 설립인가 취소 소송을 냈다. 올 1월에 이 소송 1심 선고에서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패소했다.

“2008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종전의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취소됐기 때문에 그 추진위원회에 쓴 설립동의서는 무효화된 거 아닙니까? 그런데 대법원 판결 난 지 21일만에 시청 승인을 받은 추진위와 그 추진위를 이어받아 생겨난 조합 설립동의서가 이전 추진위에서 쓰던 걸로 만들었어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조합 설립 무효 소송을 내니까 주민들 동의서를 공개하는데 내용을 보니까 2006년에 받은 추진위 설립 동의서를 갖고 위조했더라고요.” 재개발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이오찬(60) 위원장은 말한다.

새 조합은 2008년에 토지 등 소유자 675명 중 절반이 넘는 350명의 동의를 받아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2010년에는 681명 중 75%가 넘는 516명의 동의를 받아 조합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개발에 동의한 사람들 가운데 199명의 동의서가 이전 추진위 설립 때 동의해준 서류를 그대로 복사해서 썼고 187건이 서면결의서가 중복돼 있거나 날짜가 없거나 대리인이 작성했는데 위임장이 없는 경우였다고 비대위는 보고 있다. 결국 추진위 찬성자 351명에서 하자 있는 187건을 빼면 동의율은 24%밖에 안되어서 추진위 설립이 무효라는 주장이다. 절차상으로도 2008년 대법원 확정 판결 나기 전에, 같은 동네에서 또다른 추진위원회를 만든 것 자체도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아예 동의서가 위조된 경우도 있었다. 비대위가 마산 중부경찰서에 조합의 인감 위조를 고발했고 이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18명의 인영은 위조이고 모두 25명의 인감이 불확실하다고 밝혀주었다. 또 39명은 동의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서한을 제출했다. 뒤늦게 동의를 철회한 사람들도 있어서 조합 결성도 정족수 무효라는 것도 이 소송에는 포함됐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동의서가 위조됐다며 재판 과정에서 재개발 반대의사를 밝히는 39명조차 마산시청이 동의서를 수리한 이상 위조라는 별다른 증거가 없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또 서면동의서의 도장과 인감의 도장이 다른지는 육안으로 판단하면 되는 정도여야 하기 때문에 국과수의 감정으로 위조가 밝혀진 것도 마산시청이 동의서로 받아들였으면 따라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마디로 국과수가 위조라고 판정한 동의서나 본인이 부인하는 동의서조차 마산시청이 공식문서로 받아들였으면 인정해야 한다는, 일방적으로 한쪽을 편들어주는 황당한 판결이다.

이 재판은 2심으로 올라가 12월 6일 창원고법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1심 판결 때는 인영 사본으로 판정해서 3건만이 위조로 재판부 인정을 받았으나 국과수가 동의서와 인영 원본을 검토한 결과 10건은 위조가 확실하다고 자료를 제출한 상태이다.

반월동 지역은 지난 회에 쓴 정릉골 지역(10월 27일자)이 제대로 된 도시마을로 변모된 지역으로 보면 된다. 한국전쟁 후 국유지에 무허가집들이 만들어지면서 마을이 형성됐지만 국유지를 불하 받아 자기집으로 등기가 됐고 170세대만 국유지 위에 지상권을 갖고 있다.

도로는 정비되어 2005년에 소방도로까지 들어왔다. 도시가스는 들어오지 않지만 집집마다심야전기 보일러를 설치해서 겨울에도 한 달에 15만원 이내, 심지어는 5만원 내외의 난방비로 훈훈하게 살고 있다.

3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이영배(75)씨의 40평짜리 집은 길 모퉁이에 있다. 그는 심야보일러가 얼마나 좋은지 기자더러 확인해보라며 방안으로 데리고 갔다. 바닥이 따끈했다. “가까이 대학이 있어서 집을 수리해서 치킨집이나 피자집을 하면 아주 좋은데 2008년 재개발 지역으로 고시된 다음부터는 개축을 못하니까 애들이 창원에 나가서 피자집을 하고 있어요. 명년(내년)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여기로 들어오고 싶다는데 할 수나 있습니까? 이 집은 감정가가 평당 330만원으로 나왔지만 그거 들고 나가봐야 달세 1년 밖에 못 삽니다.”25년 전에 이사온 이태순(58)씨는 2002년에 집을 깨끗하게 새로 지었다. “심야보일러 쓰니까 펄펄 끓는 물 나와서 목욕탕도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난방비 겨울에도 15만원 나옵니다. 이런 집 어디서 구합니까? 난 처음 추진위 나올 때부터 반대했어요.”

이 동네를 재개발하고 들어서려는 것은 역시 아파트. 조합원 분양가는 평당 810만원으로 잡혀 있다. 감정가에서 적게는 평당 450만원, 많게는 평당 600만원인 차이가 집주인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 차이이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면 곤란을 겪을 사람들은 또 있다. 바로 이곳의 서민주택에 입주한 세입자들.

반월동에서 태어나 바로 거기서 살고 있는 토박이 중의 토박이 정만수(68)씨는 “60평 주택인데 이거 팔아도 아파트 30평도 못 들어갑니다. 이 동네에는 열다섯평, 스무평, 서른평 집에 사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어디로 갑니까? 이 동네에서 방 하나 월세 살면 500만원 보증금에 15만원 내지 20만원 받습니다. 거기 사는 분들은 진짜 어디 갑니까?”

제3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봐도 어이없는 이 재개발을 반대하려면 그냥 반대의사를 밝히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결국은 사법부에 호소해야 하는데 재판비용은 오롯이 주민 부담이다.

반원동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전 조합 추진위를 반대하는 소송을 위해 2심에서만변호사를 써서 변호사비 220만원 포함 520만원 정도의 돈을 들였으나 승소로 이 중 168만원만 돌려받았다.

2차 소송에서는 1, 2심 모두 변호사를 쓰면서 지금까지 들어간 것이 1,100만원인데 패소할 경우 상대방 재판비용까지 모두 물어야 한다.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재판마다 법정비용 168만원씩을 물어준다)은 물론 반대 주민들 손을 들어준 국과수의 인영감정에 불응해서 상대방은 사설감정사를 불렀는데 그 비용만 700만원이라고 들었다. 승소해서 상대방이 재판비용을 부담한다고 해도 이것 역시 재판마다 변호사 비용 168만원씩을 돌려받는 것이 전부이다. 이오찬 위원장은 “그나마 마산이라 변호사 비용이 얼마 안 먹혀 그렇습니다. 서울이나 부산은 변호사 비용만 1,000만원씩 달라 하대요”라고 전한다.

그나마 이 지역은 재판을 통해 재개발 지역 고시도 안하고 추진위를 인가한 지방정부의 행위는 불법하다는 게 밝혀지기라도 했다. 이오찬씨는 “마산 지역에 재개발 승인이 난 22개 구역 가운데 저희 판결 이후에 똑 같은 소송을 건 자산동을 제외하면 20개 재개발 지역이 지역고시도 않고 재개발이 진행중입니다. 법도 안 지킨 이런 재개발이 말이나 됩니까?”라고 지적했다.

법을 지키라고 시민들이 정부에 나서야 하는 재개발, 그걸 지키려면 시민들이 세금 말고 따로 돈을 모아서 재판을 걸어야 하는 재개발, 바로잡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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