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속 돼지머리로 고사 지내고, 이메일로 받은 부적 휴대폰에 저장
미역은 식이섬유와 칼슘이 풍부해 피를 맑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켜준다. 그런데 수험생이 피해야 할 음식으로 단연 손꼽히는 것이 이 미역국이다. 효능은 차치하고 일단 미끌미끌한 질감이 문제다. 왠지 시험 전에 먹었다간 주르륵 미끄러질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준다. 애초 유난했던 누군가의 걱정이 통념을 넘어 신념으로 굳어졌다. 찐득거리는 엿이나 찹쌀떡은 미역과는 반대로 시험에 찰싹 붙는다고 믿어 온 우리다.
고3 아들을 둔 A씨는 얼마 전 합격 기원 부적을 구입했다. 서울과 부산, 거리가 멀다 보니 용하다는 M스님과 온라인으로 상담한 후 이메일로 보내온 부적을 휴대폰에 저장했다. 세계적인 IT강국답게 부적도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시대다. 무지와 몽매의 대명사였던 한낱 미신 따위가 디지털 세상에서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
유명 IT기업, 사옥 신축 때 풍수지리 컨설팅 받아
과학이나 이성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미신과 금기, 징크스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디지털 산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IT업계에서도 수백 년 전 버전의 풍수지리학에 도움을 청한다. 최근 한 유명 IT기업은 지방에 연구소를 신축하면서 건물내부의 사무실 배치까지 풍수지리 컨설팅을 받았다. 여기에는 몇 년 전 풍수지리를 무시하고 새 사옥을 지었다가 각종 송사와 구설수에 휘말렸던 뼈아픈 경험이 작용했다. 박정해 정통풍수지리학회 이사장은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 대부분이 사옥 위치는 물론 건물 내 임원실이나 금고의 자리까지도 정해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 발전하고 있지만 미신, 금기, 징크스 곳곳에
큰 시험이 목전에 닥친 수험생부터 첨단 산업체까지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학생 L씨는 최근 타로 카페를 부쩍 자주 찾는다. 딱히 진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이 어렵다 보니 타로 점을 통해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는 것 만으로 희망과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마디로 “모든 게 불확실한 현실 때문”이라며 “자신이 믿는 법칙이 현실 속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 긍정적 환상(Positive Illusion)이 새로운 미신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비과학적인 믿음이 관습으로 굳어진 다음엔 두려움 때문에 좀처럼 깨지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념이 현실에 영향 줄 것" 긍정적 환상이 미신 만들고 관념화되면 깨지지 않아
불길한 징조나 물건을 뜻하는 징크스는 처한 상황이 불확실할 수록 당사자에게 가혹하게 작용한다. “집단면접에서 가장 먼저 질문을 받으면 떨어진다” “꿈자리가 사나우면 떨어진다” “비나 눈이 와서 미끄러운 날엔 합격이 어렵다”(20012년 9월 취업포털 커리어 조사) 등등. 취업 준비생들이 손꼽는 징크스는 팍팍한 현실을 대변하듯 불가항력적 상황을 불길한 징조로 설정하고 있다.
초현실적인 믿음이 지나칠 경우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최근 이화여대 캠퍼스로 몰려드는 중국관광객의 경우가 그렇다. 중국말로‘돈이 불어난다’를 뜻하는 ‘리파(利發)’와 발음이 같은 배꽃(梨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부귀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애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예로부터 안전에 민감한 운송 업계는 징크스가 많고 엄하기로 유명하다. 그 중에는 나름대로 이성적인 해석이 가능한 경우도 없지 않다. 선원들이 배 위에서 휘파람을 불지 않는 것은 언제 어디서 들려올 지 모르는 구조신호음과 휘파람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이고, 항공기 조종사들이 비행 전 배우자와의 다툼을 피하는 것도 비행시간 동안 조종에만 신경쓰기 위함이다.
수능시험, 그 결과에는 오로지 내 안의 자신감만 작용할 뿐
13일은 온갖 신묘한 징크스와 초현실적 믿음의 절규가 절정에 달하는 날이다. 2015학년도 수능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손톱과 수염, 머리카락을 한 달 넘게 기르거나 세수와 양치질도 거부한 채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 징크스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태세일 뿐이다. 시험의 결과는 덥수룩한 수염이나 부적, 미역국과는 무관하다. 오로지 내 안의 자신감이 필요할 뿐.
사진부 기획팀=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한주형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안전 관련 종사자들의 징크스>
▦소방관
퇴근 할 때까지 휘파람과 면도는 절대 금지. 휘파람은 정신적 해이를 의미. 퇴근 순간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마라.
당직 근무 중 큰 화재가 연이어 날 경우 해당 소방관을 당직근무에서 제외한다.
▦항공기 조종사
비행을 앞두고 아내와 다투지 않는다. 비행에만 신경을 써야 하므로
비행에 앞서 몸은 깨끗하게 씻지 못하더라도 속옷만은 새 걸로 갈아입는다.
갑자기 변경된 비행 스케줄(땜 빵)은 재수가 없으니 웬만하면 피한다.
▦ 승무원
귀걸이를 안하고 비행에 나서면 지연이나 결항 등 비정상 상황이 반드시 발생한다.
비행에 앞서 손톱이 부러지면 항공기 지연사태가 벌어지므로 항상 손톱 조심
오후 및 저녁 출발 비행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아무 스케줄도 잡지 않는다. 상추 등 졸음 유발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해운
뱃사람은 휘파람을 절대 불지 않는다. 해난 구조신호음과 휘파람소리가 비슷하기 때문.
배에서 안 좋은 일(장례 등)을 하면 향후 취업이나 항해 등에 악영향을 끼친다.
배 안에서 날씨가 좋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야간에는 꼭 소등하며, 배 안에서는 반바지와 슬리퍼를 착용하지 않는다(안전사고 방지).
▦버스 혹은 택시 기사
본인의 차가 아닌 다른 차를 몰게 될 경우 사고가 일어난다. H운수
▦공사현장
높이 올라가는 건물일수록 사고가 많다. - 바벨탑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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