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고가 캠핑ㆍ해외여행
힐링, 돈 들여 즐기는 문화로 왜곡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진정으로 행복한 길을 찾아야
“여보, 우리도 TV에서 나온 사람들처럼 아이들 데리고 캠핑 다녀옵시다. 우리도 힐링 좀 하고, 아이들에게도 유익할 것 같은데.” 아내의 끈질긴 성화에 9월 말부터 캠핑준비에 나선 조진만(45)씨는 캠핑을 핑계로 큰 마음먹고 SUV자동차도 구입하고, 텐트, 식탁 등도 모두 A급으로 마련했다. “이 정도면 어딜 가도 빠지지 않겠지”라는 자신감에 이달 초 가족들과 함께 캠핑에 나선 조씨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며 회의감에 빠졌다.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설치하다 아내와 싸움을 하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텐트촌에서 온갖 소음과 함께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민망한 행태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힐링은 고사하고 스트레스만 잔뜩 받은 그는 집안에 쌓여있는 고가의 캠핑도구를 쳐다보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다.
욕망에 치여 돈으로 ‘힐링’ 구매
마음을 치유한다는 의미의 힐링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즐기는 문화로 왜곡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캠핑.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캠핑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파워블로거 A씨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캠핑을 시작한 이들 중 후회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며 “옷, 음식, 캠핑도구의 격차 때문에 캠핑장에서 빈부격차를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고 했다. 또 “외제차량은 아니라도 SUV차량은 끌고 와야 캠핑장에서 기가 죽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캠핑을 할 수 있는데 누가 더 돈을 많이 들였는지 자랑하는 대회장이 된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힐링이 왜 이렇게 변질됐을까. 강도형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는 현대인이 힐링을 욕망과 결부해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정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에서 힐링이 경제적 가치로 판단되고 있는 것은 세속적 욕구결핍을 충족하려 하기 때문”이라며 “세속적 욕구가 결합된 힐링은 결국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유발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힐링을 위해 고가의 캠핑도구를 구입한 조씨가 캠핑장에서 실망을 한 것처럼 말이다.
정신분석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사랑하고 일하는데 장애가 없는 상태가 정신이 건강하다는 뜻”이라고 정의했다. 사랑하고 일하는데 장애가 없게 하려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자신이 세운 목표를 꾸준히 추구해야 하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본래의 모습을 찾는 것이 힐링”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나를 돌아보기’다. 강 교수는 “제대로 된 힐링을 위해서는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제대로 쉬고 있는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며 “힐링은 원래 없었던 것을 찾아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내 모습을 찾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현대인은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데 세속적 욕구충족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성찰해 서로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 힐링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김영택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원목실장(예수회 신부)은 “현대인이 힐링을 원하는 것은 그만큼 몸과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았다는 것”이라며 “몸은 치료하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기억으로 옮겨가 ‘기억의 상처’가 되기 때문에 힐링으로 포장된 캠핑, 여행 등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신부는 “좋은 글을 읽거나, 캠핑을 가고, 심지어 해외여행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으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진통효과일 뿐”이라며 “내가 정말 힘들고 괴로운 것이 무엇인지 원인을 치료해야 진정한 힐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적 힐링과 함께 사회적 힐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신부는 “개인은 물론 우리사회가 정화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구조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줄 아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신부는 “문제에 대한 원인규명과 함께 가해자가 인간이라면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사회구조가 잘못됐다면 이를 바로 잡아야 상처를 입은 이들이 회복돼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세상에 완전한 치유는 없기에 일생을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감각적 욕망 채우는 힐링은 진통제”
2003년 출가자의 수행 여정을 그린 KBS 다큐멘터리 ‘선객’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일묵 스님(제따와나 선원장)은“상대의 괴로움을 들어주고 위안과 위로를 통해 고통을 잊게 하거나, 캠핑이나 여행을 떠나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 보다 질 높은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힐링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일목 스님은 “이런 형태의 힐링은 일시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지만 이는 마치 진통제로 잠시 통증을 느끼지 못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통증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다른 종류의 행복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잊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힐링은 자신의 문제를 피하지 말고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파악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목 스님은 “욕망을 성취해 나가는 것이 최고 가치가 된 세상이지만 더 늦기 전에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의 흐름에서 잠시 멈춰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어떠한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쳐도 돌아갈 곳이 없는 현대인에게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고 있는 가짜 힐링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일상에서 힐링 찾기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힐링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강도형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말에 주위에 있는 둘레길만 걸어도 힐링이 가능하다”며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생각만 해서는 힘들기 때문에 산책, 명상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조정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건강의학과 교수는 “평소 10분간 명상을 통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힐링이 가능하다”며 “명상을 하는 10분 동안만이라도 신체적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기의 마음상태를 관조하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영태 신부는 “현재 자기가 갖고 있는 상처의 경중을 잘 판단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가벼운 상처는 산책, 음악, 휴식, 명상, 독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등으로 돌보면 되고 가벼운 상처는 저절로 치유되게 놔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김 신부는 또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깊은 상처는 심리치료사, 상담사, 영성지도자 등 자격을 소지한 이들에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비밀이 보장되고 믿을만하며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김 신부는 “자신의 아픔을 글로 써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건강한 정신을 위한 조언
1. 반응을 건강하게 하는 것
2. 부탁과 거절에 자유로운 것
3. 인사를 잘하는 것
4.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5. 약속을 지키는 것
6.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7. 대화를 잘하는 것
8. 공평하게 하는 것
9. 인간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것
10. 여유 있는 마음을 갖는 것
11. 시야를 넓게 갖는 것
12. 공감 능력을 갖는 것
13. 생각은 줄이고 현실에 충실한 것
14. 지혜가 있는 것
15.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
16.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는 것
17. 즐거운 일을 나중에 하는 것
18. 자기 형편에 맞게 사는 것
출처: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생각사용 설명서’(불광출판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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