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활동 활발한 상도동 성대마을...개발 과정 집값·전셋값 올라
작년 지역참여형 개선 작업지역 선정...건축가 주대관씨 마스터플래너 발탁
단열창 보급 등 에너지자립 지원...주민이 원하는 장기 임대주택 보급
오래 살 수 있는 마을로 조성 바람직
서울 상도3, 4동 성대시장 위로 올라가는 ‘성대골’은 서울에서도 가장 주민자치운동이 활발한 곳이다. 아이들이 책도 읽고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조잘대는 어린이도서관이 있고 어른들이 초등학생들과 생태활동을 다양하게 펼치는 방과후 학교(마을학교)도 있다. 전기를 켜지 않고 겨울이면 난로로 난방을 하는, 에너지수퍼마켓이 10개가 있고 절전을 신경쓰는 ‘착한 가게’도 80개나 있다. 요즘 같은 철이면 약간 쌀랑하지만 굳이 난방을 하지 않는 동네, 햇볕이 있으면 전등을 켜지 않는 동네. 주민자치활동 장소만 그런 게 아니라 동네 집집마다 그렇게 에너지를 아낀다. 그래서 이 동네는 ‘에너지절전소’가 있다고 말한다. 동작구 인구가 늘었지만 전기사용량이 비례해서 늘지 않은 것은 이 절전소 덕분이라고 할 정도.
“전기사용량을 12%만 줄이면 핵발전소 하나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래요. 그래서 절전소라고 이름 붙였어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보면서 에너지 자립을 하는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2009년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 마을의 갖가지 자치운동의 물꼬를 튼 주인공 중 한 명이자 현재 지역 주민모임 성대골사람들 대표 김소영(44)씨가 말한다.
성대골에는 태양열로 커피기계를 돌리고 자전거를 움직여 솜사탕을 만드는 친환경 카페 해!바라기도 있고 단체급식을 하는 협동조합형 마을기업 노나메기도 있다. 가출청소년을 지원하는 좋은세상을만드는사람들도 있고 마을개선 용역사업을 하는 마을닷살림도 있다. 에너지자립을 위한 건축리모델링 전문시공집단도 있다. 곧 있으면 주택협동조합도 생겨날 예정. 성대골의 마을조직은 모두 마을 사람들 스스로 고민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오래 산 사람들도 새로 온 사람들도 계속 여기서 살고 싶어한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자랐어요. 그때는 이웃이 누구인지 신경도 안 쓰고 살았어요. 2010년 결혼하고 남편이 살던 이 동네에 살림을 차렸는데 곧바로 어린이도서관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어린이연극 연출자니까 찾아가서 아이들을 위해 뭐 좀 하겠다고 했지요. 아이들과 연극놀이도 하고 마을 축제, 탈 퍼레이드도 해요. 이웃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올해 아기도 낳았어요. 안고 나가면 동네 분들이 다 반기지요. 시장에 아는 상인도 있으니까 괜히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가게도 들렀다 가고. 이게 사람 사는 재미잖아요. 계속 여기서 살고 싶어요.”이정은(32)씨의 말이다. 계속 머물러 살고 싶지만 쉽지는 않은 일. 이곳도 전세가격이 해마다 1,000만원씩은 오르더니 이씨네 집은 아예 월세로 바뀌었다. “일단은 몇몇이 모여서 주택조합을 만들기로 했어요. 장기임대주택이 동네에 생겨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청소년을 위한 마을운동을 해온 박신연숙(47 좋은세상을만드는사람들 사무국장)씨도 동네에 장기임대주택이 없어서 다음달이면 이사를 간다. 그 역시 최초의 마을 자치운동에 물꼬를 튼 주인공 가운데 하나.“7년이나 살던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지요. 일터와 삶터를 일치시키는 게 제 목표고 그게 여기서 이뤄졌는데 다달이 100만원씩은 저축해야 겨우 전세값을 맞출 수 있으니까 저희 같은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쉽지 않거든요. 뭐 되겠어 하는 심정으로 아현동 임대아파트에 신청을 했는데 덜컥 된 거예요. 장기임대주택이 생겼으면 좋아해야 하는데…심란하지요.”
박씨는 원래 아현동에 살다가 그곳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이 되면서 이곳으로 왔다. “도시 생활이라는 게 원래 정주성이 없지만 아파트 단지로 밀어버리면 더 그렇지요. 이웃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버려요.” 그런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파트 일변도의 개발정책을 버리고 마을 살리기를 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꾼 것은 지지하지만 그걸로만 만족하기는 아쉬움이 많다. 장기임대주택은 아파트 단지에 아파트 형태로만 지어지기 때문. “정주성을 지켜주지 않으면 마을 만들기는 공허한 구호예요. 이런 동네에 안심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주택들이 들어서야 해요. 성대골에 주택협동조합이 성사되면 다시 올 겁니다.”
성대골도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정책 중의 하나인 주민참여형 주거환경 개선사업에 2012년채택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이뤄진 일은 주거 자체가 아니라 지역 개선 정도. 30억원의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공영주차장을 주차장 겸용 공원으로 만들고 주민자치활동 시설이 들어갈 수 있는 소규모 커뮤니티(지역)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예산에 맞춰 해당지역도 성대골 전체 중에서도 매우 일부인, 1,200가구 2,000여명이 사는 5만제곱미터만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에 이르기도 쉽지 않았다. 에너지절전소를 견학 온 대학생 3명이 2012년 서울시의 대학생 대상 주거환경 개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에 ‘에너지자립마을’을 주제로 냈고 그게 당선되면서 작년 5월에 지역참여형 주거환경 개선사업 지역으로 선정이 됐다. 물론 성사되기까지는 지역 활동가들이 작년 1월부터 일일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대상지역 가구 1200 중의 절반인 600가구의 동의를 얻어내야 했다.
“싫어요 하면 차라리 나은데 불러 세우고 화를 내면서 잔소리를 해요. 동네를 살리자는 일인데 뭔가 얻는 게 있으니까 저러고 다닌다는 색안경이 제일 힘들었어요.” 김소영씨는 말한다.
이어 8월에는 그 예산으로 뭘 할지 주민의견을 모으고 설득해내는 용역업체(시행사)가 선정됐다. 원래는 주민들 스스로 이 역할을 하려고 마을닷살림을 만들었으나 선정되지 않았다. 서울대 도시계획과 대학원 졸업생으로 2012년 에너지자립마을 대학생 공모에 응모했던 3명 중 한 명인 문승규(28)씨는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 마을닷살림을 만든 주축이기도 하다. “주민들 만나보면 집수리도 안 해주는데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해요. 마을닷살림이 주민들의 생각을 모으는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지역문제와는 무관한 업체가 시행사로 선정되더라고요.”
10월에야 전체를 조율하는 마스터플래너가 선정됐다. 이것만은 주민들이 원한 건축가 주대관 액토건축 대표가 됐다. 주대관 건축가는 충남 서천에서 재래시장의 소유자와 세입자, 인근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 것을 조율해서 봄의마을이라는 근사한 문화공간을 만든 경력이 있다. 태백에서 완주에서 오래된 마을을 주민이 만족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낸 경력이 풍부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마을을 설계하는 것도 아니고 주거지를 고치는 것도 아닌 고작 공영주차장을 마을공원으로 만드는 일. 마스터플래너로 건축가가 왜 필요한 것일까.
김소영 대표가 말한다. “이런 일 뚝딱 몇 명이 결정해서 그냥 가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 의견을 다 들어야 진짜로 마을 만들기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다 듣잖아요? 별 의견이 다 나옵니다. 무조건 공원만 하자는 사람도 있고 주차장 늘리자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나타나서 ‘뭔가 있으니 당장 집어치우라’는 사람도 있고. 그 조정 역할을 전문가가 하면서 시민들의 제안들에 현실성을 일깨워 주는 거지요. 게다가 구체적인, 더 나은 해결책까지.”
주대관 대표가 말한다. “가령 분수대 만들자고 하잖아요. 사람들은 건설비용만 생각해요. 모터 가동비, 물값 등등 나중에 들어갈 운영비는 누가 댈 거냐까지 일깨워줘야 해요. 여기서도 공원만 만들어도 30억원 다 들어갈 수 있다는 현실부터 말해줬어요. 한국사회는 갈등은 나쁜 걸로 보고 서둘러 봉합하려고만 하는데 어떤 곳에서든 갈등은 당연한 것이예요. 그걸 조정하는 역할, 시를 대신해서 주민들에게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게 하는 게 마스터플래너의 역할입니다.” 그 덕분에 이곳은 그냥 주차장, 그냥 공원이 아니라 비탈진 지형을 이용해서 주차장을 2층으로 만들어 종전의 주차대수를 확보하면서도 절반은 공원으로, 심지어는 이곳에 이어서 커뮤니티 센터까지 세우는 것으로 계획이 확정됐다. 내년초 예산이 나오면 상반기 중에 완성될 예정이다. 커뮤니티센터가 들어서면 공공의 역할을 하면서도 주민들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서 월세를 분담해왔던 마을의 자치활동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이걸로 주거환경 개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현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70%가 세입자라서 주거환경이 급격히 좋아지는 것을 꺼리는 현실도 있다. 집이 좋아지면 전세가나 월세가 올라서 떠나야 하기 때문. 이곳을 떠나느니 차라리 추레하게 사는 게 낫다는 세입자들의 본심이다.
이 때문에 주거환경 개선은 주민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주민들 스스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수준으로 차근차근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 대표는 말한다. 그는 그런 바람직한 대안으로 집집마다 창호를 개선해서 단열을 해주는 공사를 첫번째로 꼽는다. 에너지자립마을이라는 원래의 구상에도 맞고 서민 개개인은 에너지 비용이 덜 들고 국가와 사회는 에너지 소비를 줄여서도 좋다고. 그래서 그는 요즘 마스터플래너로 지역 단열공사 예산을 따내기 위해 부지런히 서울시청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에너지자립으로 가는 길은 1.절약 2.단열 3.신재생에너지의 활용이라서 선진국의 경우 당연히 이 순서로 정부 지원도 이뤄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업체의 로비탓인지 태양광 태양열 시설을 가정에 설치하면 그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주는 3번의 정책만이 있고 2번 단열에 대한 지원은 지역에 따라 극히 일부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주대관 대표는 “성대골은 주민들 스스로 이미 절약을 이뤄낸 곳이니 단열을 보급해서 이 정책이 서울시나 혹은 나라 전체에 얼마나 유익한 전환이 될지 시범마을을 삼아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주민들이 원하는 장기임대주택이 일반주택가에 자리잡게 하는 방안도 구체화되어야 사람들이 이웃으로 오래 살수 있는 마을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그 방안은 다음주에 다룰 예정)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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