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체 고위험음주율 증가 속
20대는 9.2%로 특히 높아
직장ㆍ이혼 걱정에 숨기는 경우 많아
가족들이 초기 치료에 적극 나서야
# 대학 2학년생 P양은 최근 알코올전문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입원을 결심했다. 청소년기부터 마셔온 술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 입원 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20대 입원환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입원 환자 50명 중 8명이 20대 여성이었다.
#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주부 K씨(46)는 얼마전 남편과 상의 끝에 알코올전문병원에서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결혼 15년차인 그녀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끝낸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상태가 악화됐다. 처음에는 기분전환을 위해 술을 마셨지만 갈수록 음주 횟수와 양이 증가해 아이들 양육도 불가능하게 됐다. 낮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아내의 알코올중독 문제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던 남편은 아이들이 “엄마가 이상하다”라는 하소연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알코올 탈수효소 부족한 여성, 과도한 음주 치명적
우리나라 20~40대 여성의 음주문제가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고위험음주율(알코올중독)은 9.2%로 가장 높았다. 30대는 8.4%, 40대는 6.4%를 기록했다. 문제는 갈수록 여성의 고위험음주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 2005년 3.4%에 불과했던 여성 고위험음주율은 2012년 6.0%로 증가했다. 20~40대 여성의 음주 증가가 수치를 끌어올린 것이다. 2011년 실시된 정신질환실태역학조사 결과도 “여성의 경우 18~29세 연령군에서 알코올 사용장애 유병률이 가장 높다”며 “남성에 비해 여성의 알코올 남용이 증가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알코올 섭취에 따른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이정훈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체구가 작고, 체중 가운데 수분비율이 작아 남성과 동일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했을 때 더 큰 영향을 받는다”며 “여성은 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위 알코올 탈수효소(alcohol dehydrogenase)’ 기능이 남성에 비해 떨어져 알코올이 위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고 간과 혈류로 들어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성 간경화, 알코올성 간염, 지방간 발생위험이 높고, 알코올에 의한 뇌 손상은 물론 알코올성 심근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다”며 “유방암의 경우 약 11%는 음주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 된다”고 했다. 1996년 3,801명에 불과했던 유방암 환자가 2011년 1만6,967명으로 급증한 것이 여성의 음주량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다.
여성호르몬 알코올 간 손상 영향… 태아 알코올 증후군도 심각
박지원 한림대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알코올성 간 손상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음주를 삼가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 혈중에는 내독소가 증가하는데 내독소가 간에 도달해 간의 염증반응에 기여할 때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장 투과성을 증가시켜 내독소에 의한 간 염증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교원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교수(자연출산센터장)은 “여성이 장기적으로 음주를 할 경우 월경분순, 월경 양 증가, 불임, 조기 폐경 등 부인과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산모가 임신초기 과도한 음주를 할 경우 태아에게 영향을 미쳐 ‘태아 알코올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으로 태어난 신생아는 뇌 기형(소뇌증), 심장기형, 성장 및 발달 장애 등 신체 장애와 함께 주의집중 이상, 행동장애, 과잉행동 등 정신적 장애를 동반할 수 있는데, 2011년 질병관리본부 연구용역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산모의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태아 알코올 중후군 비율은 1,000명당 5.1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성 알코올중독자 이혼 등 피해 급증…주류회사 마케팅도 한몫
심각한 여성음주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허성태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여성의 경우 혼자, 낮에, 몰래 술을 마실 경우 알코올중독을 의심해야 한다”며 “평소 즐겨온 취미생활도 하지 않고 음주 때문에 직장에서 실수를 하거나 우울증상이 있다면 술을 삼가야 한다”고 했다. 허 원장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음주문제가 드러났을 때 이혼을 당하는 등 사회ㆍ경제적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다”며 “알코올중독도 병인데 가족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알코올중독에 걸린 여성을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허 원장은 “20대에는 직장생활에 문제가 생길까봐, 30대 이후 결혼을 하게 되면 양육에 차질을 빚을까봐 여성이 알코올중독에 빠져도 문제를 숨기는 것이 현실”이라며 “참고 참다가 일생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때 뒤늦게 병원을 찾지 말고 초기에 알코올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들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주류회사들의 마케팅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류회사들이 저도소주를 내세워 여성음주를 유도하고 있다”며 “저도소주 출시로 순수 알코올로 환산한 알코올소비량은 줄었지만 음주율과 고위험음주율은 상승하고 있는데 특히 알코올 대사능력이 취약한 여성의 알코올 고위험음주율이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한 여성들이 자식들이 성장해 곁을 떠난 후 삶이 무의미해져 알코올에 의존하는 ‘키친 드링커’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여성이 알코올중독자가 되면 가정파괴가 급속도로 진행될 뿐 아니라 치료에 애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아 여성 알코올 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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