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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0만 독일인은 평범한 악...나치의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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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0만 독일인은 평범한 악...나치의 공범이었다

입력
2014.11.2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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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마이어 지음ㆍ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ㆍ484쪽ㆍ1만8,500원

히틀러 조력 '작은 자들' 10명 인터뷰

유대교회당 방화 사건에 침묵ㆍ방조만

"안위 위해 범죄에 눈감고 있던

평범한 개인들에게도 책임 물어야"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나치즘의 광기가 물러간 1955년 10명의 평범한 독일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전횡에 소극적으로 동참했거나 방관했던 그들을 저자는 ‘평범한 악’ ‘나치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나치즘의 광기가 물러간 1955년 10명의 평범한 독일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전횡에 소극적으로 동참했거나 방관했던 그들을 저자는 ‘평범한 악’ ‘나치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물론 독재였죠. 그거야 우리 부모님들이 겪었던 ‘황금기’라는 전설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하지만 폭정이라니.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범죄는 흔히 아돌프 히틀러와 소수 추종자의 전횡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당시 7,000만명에 달했던 독일 인구 중 불과 100만명의 힘만으로 그 끔찍한 비극을 자행할 수 있었을까. 유대계 미국인이자 언론인인 밀턴 마이어의 책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6,900만명의 평범한 독일인들이 어떻게 나치의 공범자가 됐는지 다룬다. 나치와 히틀러의 만행이 생생하던 1955년 출간된 책으로 60년 만에 한국어로 발간됐다.

책은 저자가 1년간 독일에 거주하면서 나치에 가담했던 평범한 독일인 10명과 심층 인터뷰 한 내용을 토대로 쓰였다. 스스로를 ‘작은 자들’이라 칭한 평범한 독일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이들의 안이함과 침묵, 방조가 비극을 불러왔다고 진단한다.

책은 1938년 독일의 작은 도시 크로넨베르크에서 벌어진 유대교회당 방화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에 가담했거나 사건을 목격한 10명의 목격담과 당시 그들의 감정을 토대로 방화사건 전후를 재구성했다. 독일 나치돌격대(SA) 중대장, 경찰관, 빵집 주인, 학생 등 다양한 인물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이 사건은 특정집단을 향한 범죄에 무감해지고 있던 당시 독일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교생이던 호르스트마르 르프레히트는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유대인, 죽어라!”라고 외치며 아버지에게 불구경을 가자고 졸랐고 빵집 주인 하인리히 베데킨트는 유대교회당이 불타 없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다음날 아침 “그랬군”이라는 짤막한 말만 남기고 자신의 빵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묵과 방조가 만연했던 1938년부터 이미 역사의 비극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전쟁이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몇몇 사람들은 히틀러 시절이 자기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회상했다. 나치 시대에 누렸던 풍족한 삶과 복지 혜택을 그리워하면서 “비록 히틀러가 잘못을 했지만 잘한 부분도 있다”고 두둔하기까지 했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들은 여름에 캠프에 가고 ‘히틀러 소년단’ 때문에 거리를 쏘다니지 않았기에” 가정과 사회 모두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치라는 새로운 질서의 축복이 모두에게 도달했다는 믿음”과 “공동체의 외부로 나가지도, 시선을 돌리지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던” 독일인의 태도가 비극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쓴 ‘어느 독일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1939년 쓰인 이 책은 저자가 일곱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독일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1933년 절반이 넘는 독일인의 반대를 받던 히틀러가 어떻게 서서히 독일사회의 우상이 돼갔는지 다뤘다. 독일민족주의를 앞세운 나치는 집권 뒤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을 악마화하는 선전선동을 통해 반대자들을 숙청했다. 56%의 지지를 받은 다른 정당 지도자들의 비겁과 변절도 나치의 부상을 도왔다. 저항거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치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나치 쪽으로 투항하기 시작했고, 노동자 수십만명이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을 버리고 나치 돌격대가 됐다. 두 책 모두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에 참관한 후 제기한 ‘악의 평범성’ 이라는 문제의식을 관통한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묵인한 ‘평범한 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마이어는 사회뿐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거 없는 종북몰이와 군부독재미화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한국사회,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대다수의 한국 국민이 눈여겨봐야 할 책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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