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길이 있다. 1시간 30분간 기차를 타거나, 3박4일간 산길을 걷거나. 페루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로 가는 길 이야기다. 먼 길을 택했다. 이른바 ‘마추픽추 잉카트레일’, 잉카제국의 전성기에 차스키(잉카의 전령)들이 중심도시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오가던 길이다. 1948년 탐방로가 열리고, 1987년 도로가 개설돼 본격적으로 관광객을 맞기 전까지는 마추픽추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쿠스코주 피스카쿠초에서 마추픽추에 이르는 이 길은 곳곳에 산재한 잉카유적과 빼어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트레킹 여행자에게는 세계적인 코스로 손꼽힌다. 포터와 가이드를 포함해 하루 입장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실제 여행자는 200여명 안팎이다. 한국언론으로는 최초로 마추픽추 잉카트레일 45km를 3박4일간 걸었다.
1일차, 마추픽추로 떠나는 소풍
쿠스코에서 약 70km떨어진 오얀타이탐보에서 비포장 도로를 또 1시간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피스카쿠초, 찻길은 이곳에서 끝난다. 잉카트레일은 마추픽추 국립공원 여권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행운의 꽃 마스테발리아도 보고, 운이 좋으면 곰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 에드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벌써 13년째, 거의 매주 트레일을 안내한다는 그는 첫날은 소풍이라며 여행자보다 들뜬 표정이다.
소풍은 길가에서 만나는 수많은 꽃들로 시작한다. 마약성분이 들어있는 엔젤스트럼펫, 포도열매와 비슷한 쌈부까, 배가 아플 때 먹는 떼라 열매 등 안데스 고산식물을 줄줄이 꿰고 있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꼬치니아 벌레를 터트리자 진한 붉은 색이 손바닥 가득 퍼졌다. 립스틱의 원료이기도 하고 18가지 혼합색소를 만드는 페루의 색이자 잉카의 색이다.
그사이 길은 우루밤바강에서 점점 멀어지고 발 아래로 제법 넓은 평원을 만난다. 바로 그곳에 약타파타 유적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4개의 계곡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고, 남부의 열대과일과 북부의 옥수수를 맞바꾸는 장터이기도 했다. 유적은 위에서부터 주택과 농지 수로의 3개 구역으로 구분되는데 물길의 곡선을 층층마다 그대로 살렸다. 유적 자체가 물 흐르듯 유연하다. 하늘에는 콘도르, 땅에는 퓨마, 지하에는 뱀 등 잉카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3가지 동물 중 약타파타는 뱀의 형상을 본뜬 모양새다.
‘신성한 계곡(sacred valley)’우루밤바강과 나란하던 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틀어 또 다른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이따금씩 나귀에 짐을 싣고 이동하는 주민들도 만나고 군데군데 마을도 지나지만 계곡은 점점 옹색해진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눈 덮인 베로니카산이 바짝 뒤따라 온다. 아우상가테, 살칸타이와 함께 쿠스코의 3대 명산이다. 약 2시간을 더 걸으면 첫날 야영지 와이야밤바 마을이다. 앞서간 포터들이 이미 텐트를 치고 물을 데워놓고 여행자를 맞는다. 그래 첫날은 소풍이다.
2일차, 바모스(vamos) 4200! 푸에르자 차스키스(fuerza chasquis)!
해발 4,200m가 넘는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 둘째 날은 무엇보다 고산병이 걱정이었다. 이미 이틀 전 쿠스코(3,400m)에서 톡톡히 앓았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숙취가 계속되는 고통에 시달렸다. 한발 떼기가 무겁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기대만큼 욕심도 컸다. 렌즈를 몇 개 더 준비했지만 기본 렌즈 외에는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산은 그렇게 겸손할 것을 주문했다.
출발부터 오르막이다. 멀어지는 물소리 대신 새소리가 청아하다. 야영장을 가로막고 있던 고봉이 멀어지는 만큼 풍경은 넓어진다. 독일 브라질 미국 등 다국적 여행자 그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엇갈릴 때마다 “바모스(Vamos!)”라며 서로를 응원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빠르게 이동하는 포터들에게는 “푸에르자 차스키스(Fuerza Chasquis!)”로 격려한다. 차스키는 잉카 전령이다. 왕명을 전달하고 진상품을 올리는 역할을 맡은 이들은 20세 전후 귀족의 자녀 중에서 뽑았다. 일정 거리마다 대기소를 만들고 릴레이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500km 이상 떨어진 바다에서 쿠스코의 왕에게 신선한 해산물을 진상할 수 있었고, 3박4일 일정의 이 길을 6시간에 주파했다니 체력과 민첩성은 따를 자가 없다. 25kg의 짐을 메고 평지를 달리듯 4,200m 고지를 거뜬히 뛰어넘는 포터들 역시 차스키의 후예들이다.
3,800m 고지의 마지막 매점을 지나자 드디어 계곡이 사라졌다. 오른편 아래 좁은 초원은 위로 갈수록 초록이 옅어져 황갈색으로 변하고 꼭대기는 눈 덮인 검은 바위산이다. 그 절벽 곳곳에서 라마가 풀을 뜯고 있다. 맑은 공기 탓일까, 고소 때문일까? 원근감이 떨어진다. 초원은 손에 잡힐 듯한데 라마는 작은 점이다. 발걸음이 급격히 느려졌다. 한 발짝 뗄 때마다 입에선 단내, 코에선 쇳소리다. 가이드가 손바닥에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 살짝 비벼 깊이 들이마시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든다. 방향식물에 알코올을 섞은 거란다. 풀벌레소리 비슷한 이명만 머릿속에 잉잉거린다. 안쓰럽게 생각했던 몸집 큰 텍사스 아주머니가 일행을 추월했다. 뒤따르는 마라톤 선수가 왜 반 발짝 앞선 선수를 따라잡지 못하는지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고산에서 경쟁의식은 금물이다. 힘들 때마다 쉬면서 숨을 고르는 게 상책이다.
드디어 와르미와뉴스키(4,215m) 고갯길 정상, 한 숨 돌린 후에야 경치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V자 계곡 사이로 벽처럼 보였던 앞산과 얼추 눈높이가 비슷하다. 아침에 출발한 마을은 계곡아래 까마득하다. 일행 모두 생애 최고지점에 올랐다. 시원한 풍광만큼 뿌듯함이 크다.
다음 야영지까지는 올라온 것보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지만 오르는 것보다는 수월하다. 해발 600m를 단숨에 내려간다. 오늘 하루는 여행자도 차스키다.
3일차, 변화무쌍 안데스, 대자연의 장엄한 쇼.
오른 만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올라야 하는 산의 이치가 야속하다. 짐을 챙기자 마자 또 오르막이다. 룬쿠라카이 유적에 오르자, 간밤에 잠을 설치게 한 물소리의 정체가 밝혀졌다. 뒤편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거대한 물줄기가 2단 폭포로 떨어지고 있다. 룬쿠라카이는 간결하고 동그랗게 돌을 쌓아 올린 작은 성이다. 신전과 군사초소, 차스키의 휴식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산중에서도 하루 종일 해가 드는 곳에 자리 잡았다.
고갯길을 한 굽이 돌자 느닷없는 호수를 만난다. 하늘색이 그대로 비친 산중호수 풍경이 또 다른 세상이다. 고갯길을 내려가는 도중에 만나는 사약마르카 유적은 산줄기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어 닭볏을 연상케 한다. 비스듬하게 쌓아 올린 석벽의 곡선이 부드럽다. 예각과 둔각으로 쌓은 것은 일종의 내진설계다. 드릴로 정교하게 파낸 듯한 수로와 손잡이 구멍은 잉카인들의 석공기술을 한눈에 보여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결국 일이 터졌다. 따가운 햇살 대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데스 산악지역은 10월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우기다. 2월에는 아예 잉카트레일도 운영을 중단하고 보수공사에 들어간다.
운해에 가려 높낮이 분간이 없어지자 트레일은 마을 길처럼 편안하다. 먼 풍경이 사라지자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끼와 기생식물로 뒤덮인 나뭇가지는 열대 우림이다. 이곳에선 구름이 만들어낸 숲(cloud forest), 운림(雲林)으로 부른다. 마추픽추 국립공원은 산악과 아마존 밀림의 경계에 있어 생물다양성도 풍부한 곳이다.
마지막 야영지 푸유파타마르카는 3,700m 고개 정상이다.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가 잦아들고 짙은 구름 사이로 고산 능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은 수천 미터 협곡을 놀이터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해질 무렵에는 살칸타이(6279m), 베로니카(5822m), 푸마시요(6070m) 등 눈 덮인 고봉들이 기어코 실체를 드러냈다. 저녁식사가 끝날 즈음엔 텐트위로 남반구의 별들이 쏟아져 내려 장관을 이뤘다. 불과 두어 시간 사이에 안데스는 변화무쌍한 신공을 발휘해 장엄하고 신비로운 대자연의 모습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4일차, “Nobody knows”신비의 마추픽추.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는 순간만은 용케도 참아줬던 비가 출발과 동시에 다시 시작됐다. 새벽 4시30분, 주위는 어둠보다 더 짙은 구름에 덮였다. 과연 마추픽추를 볼 수 있을까? 가이드의 대답은 얄밉게도 “Nobody knows(아무도 모르지)” 였다. 사실 트레킹 내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잉카제국에는 4가지가 없었다. 도둑이 없어 자물쇠가 필요 없었고, 수레를 끌만한 큰 동물이 없어 바퀴문화가 없었다. 화폐가 없어 물물교환 경제였고, 마지막으로 문자가 없었다. 조선초기에 해당하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의아하다. 잉카의 신비는 여기서 비롯된다. 기록은 1533년 이후다. 스페인 정복자와 잉카인의 결혼으로 탄생한 메스티조는 아버지 나라의 문자로 외가댁 구전을 기록했다.
정복자의 침입이 없었던 마추픽추 몰락은 더욱 미스터리로 남았다.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은 추정과 가설이 대부분이다. 처녀를 태양신에 바치던 신전이라는 설에서부터 잉카제국의 9대왕 파차쿠텍의 개인별장이라는 설, 아마존을 정복하기 위한 전초기지라는 설 등으로 분분하다. 태양의 신전, 인티와타나, 콘도르신전 등 내부 유적에 대한 해석도 조각난 퍼즐을 꿰어 맞추는 수준이다.
경적 소리는 점점 가까운데 주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처음으로 마추픽추를 볼 수 있는 인티푼쿠(태양의 문)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초조하다. 바로 옆의 지형도 분간할 수 없는데 직선으로 1.4km나 떨어진 마추픽추가 보일 리 없었다. ‘이대로 내려갈 순 없지,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인티푼쿠 고개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일행 중 한 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열렸어요, 빨리 오세요”믿기지 않았다.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열릴 줄은 몰랐다. 모든 풍경이 구름에 가렸는데 오직 마추픽추만 오롯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은 끝없이 일렁이고 있었지만 거짓말처럼 그곳만은 가리지 않았다. 사위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가 공중도시를 더욱 신비스럽게 감싸고 돌았다. “Nobody knows”. 3박4일의 잉카트레일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극적인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마추픽추(페루)=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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