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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아니 '엄마 반, 아기 반' 속의 고독

입력
2014.12.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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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6갤(개월)’ 아들도 사교육 대열에 합류했다. 추운 날씨에 집에만 있으면 갑갑할 것 같아 등록한 문화센터(문센) 겨울학기가 지난주 개강했다. 아빠랑만 노는 아들의 사교성, 사회성 결여를 걱정한 아내는 진작부터 문센 입학을 희망했지만 지난 여름 맛보기 프로그램에서 ‘땀 뻘뻘, 몸 뻣뻣’ 혼난 내가 한 학기만 미루자고 했던 그 문센이다. (관련기사 보기▶ http://goo.gl/yXHsGc)

아내가 원하던 아들의 문센 입문이지만, 사실 최근에는 내가 바라고 바라던 바다. ‘아빠가 휴직까지 하고 있는데 뭣 하러 그런 델…’ 하던 나는 아내 복직 후 아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하면서 좀 지치기도 했고, 집에서 놀거리가 궁해 ‘멍때리고’ 있을 때나 아들을 태우고 어디로 차를 몰고 있는지 깜빡깜빡 할 때, 그리고 비오는 날 지하철로 아들을 뺑뺑이 돌리고 있을 땐 또래 아이들이 몰려 있을 문센 생각이 간절했다. ‘이것 저것 따질 것 없이 시간 맞춰 가기만 하면 이래저래 두 시간은 족히 때운다’던 육아 선배의 말이 문센을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아들은 기동력 좋은 아빠 덕분에(휴직 후 자동차 주행거리가 세 배 정도 늘었다. 엔진오일만 두 번 교체) 고독했다. 아빠랑만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았다. 그 과정에서 우연하게 두어 번, 많으면 서너 번 마주치는 또래들이 있었을 뿐, 같이 놀고 싶을 때 연락해서 같이 놀 수 있는, 정기적으로 보는 친구 같은 친구는 없었다. 육아휴직 아빠의 고독을 아들도 대물림 받는 것 같았다.

아직 절실하지 않은 것인가. 이 아빠는 ‘엄마 반, 아기 반’의 저 한복판에 들어가 아들과 놀아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직 절실하지 않은 것인가. 이 아빠는 ‘엄마 반, 아기 반’의 저 한복판에 들어가 아들과 놀아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개강일 시간 맞춰 가니, 역시 부자(父子) 수강생은 우리 팀이 유일했다. ‘엄마 반, 아기 반’이런 분위기에 좀 적응됐지만 이날은 또 달랐다. 고작 두 번째 수업 날이었는데 다른 팀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나누는 이야기 수위로 보아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같은 유모차 부대원들끼리 단체로 강좌에 든 것 같았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을(그렇게 반가울 수 없는!) 만났지만 이 아빠는 외로웠고, 아들은 또래들이 바글바글하는 분위기가 낯설었는지 아빠 무릎 위에서 떠날 줄 몰랐다.

사실 이날 문센 풍경은 나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한번 보고 말 게 아니라, 다음 주에 또 만날 사람들이므로, 놀이터에서만 이따금 만나는 길 위의 육아동지는 더 이상 아닐 것이므로 다른 아줌마들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때문에 첫 수업 전날 이 아빠는 잠을 살짝 설치기도 했고, 챙겨 나가면서 아들 옷맵시 한번 더 보고 이 아빠도 거울 앞에 한번 더 섰었다!) 그런데 이날 이 아빠는 그 어떤 엄마와도 말 한마디 섞지 못했다. 또래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 것 같았던 아들은 아빠랑만 놀았다. 첫술에 배 부르겠냐만 괴리감 아닌 괴리감이 돌았다. 아빠가 노는 집으로 우리를 봤는지, 엄마가 없는 집 아들로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줌마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도 실감했다.

문센이 놀거리 빈곤한 이 아빠의 피난처가 될지, 문센 동기들이 진짜 친구가 될지, 살아있는 육아 정보 공유장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들에게 우선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 아닌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욕심일 것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따를 수 있어야(이건 과욕인 것도 안다) 한다는 것을 그냥 ‘보여주고’ 싶다. 아들이 아빠 품에서 독립하기 전에 알려줘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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