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돈암동 금호어울림 아파트는 입주를 시작한 지 40여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입니다. 총 490가구 가운데 입주를 한 곳은 50가구 정도. 게다가 아파트 주변에는 검은 파카를 입은 용역업체 직원 20여명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아파트 입구와 담벼락에서 하루 종일 오가는 이들을 감시하면서 말입니다.
용역 직원들이 하는 일은 입주민들을 분류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입주민의 신원을 파악해 아파트 단지로의 입장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입주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돈암 5구역을 재개발한 이 아파트는 330여 가구가 조합원의 몫이고, 나머지는 일반분양(76가구)과 임대(83가구)로 구성됩니다.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일반과 임대세대에게만 있습니다. 330가구의 조합원들은 이사는커녕 단지 내에 발조차 들일 수 없습니다. 재개발을 주도했던 조합원들이 정작 입주조차 못하게 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입주를 막고 있는 주체는 공사를 담당한 금호건설입니다. 명분은 유치권입니다. 유치권은 건물공사 등을 통해 공사대금을 비롯한 채권이 발생한 경우 채권을 돌려받을 때까지 물건을 점유하는 권리를 말합니다. 금호건설은 조합원들로부터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액은 82억원입니다. 조합원들은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사실 9월에도 이 같은 사연을 보도(9월 16일자 16면 ‘재개발 입주 두 달 앞두고 “3000만원 더 내라”’)한 바 있습니다. 당시는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이었습니다. 금호건설은 추가공사비 96억원을 내지 않으면 입주를 막겠다고 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금액이 14억원 가량 낮춰지기는 했지만 조합원들이 부담하기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액수입니다. 가구당 많게는 1억원, 적게는 1,500만원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이 추가비용 지불을 거부하는 이유가 단지 돈이 너무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82억원이나 부담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공사 비용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수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습니다. 도중에 금호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데다 일반 분양 과정에서 견본주택 건립 등 비용 발생 책임을 따지기 애매한 사안들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작년에는 6개월 가량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습니다.
결국 양측은 올 4월 건축사협회로부터 추가 공사비 감정을 받기로 합의합니다. 그리고 감정 결과 조합측이 지불해야 할 금액은 16억5,000만원으로 책정됐습니다. 하지만 금호건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나서면서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문제는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입주를 막겠다고 한 것입니다. 현행법상 유치권은 자격을 갖춘 유치권자(부동산 점유자)가 신고를 하면 바로 성립이 됩니다. 전세금을 못 받게 된 임차인 등 상대적인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해마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 사례란 시각이 많습니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빨라도 1~2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때까지 유치권을 행사해 입주를 막는다면 버틸 수 있는 조합원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은 시공사의 편이란 얘기입니다.
실제로 11월 입주에 맞춰 이사를 준비해오던 조합원 330여 가구는 급히 살 곳을 구하기 위해 월셋집을 마련하거나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 가운데 10여가구는 추가 비용을 내고 입주를 하는 것을 택했다고 합니다. 조합측에 따르면 “대부분 가족 가운데 환자나 임산부가 있는 다급한 경우”입니다.
보다 못한 조합원들은 법의 힘을 빌기로 했습니다. 조합측은 7일 서울지방법원에 금호건설측의 점유가 불법이라며 ‘부동산 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습니다. 신청 요건을 갖추기 위해 중도금 잔금과 무이자 이주비도 모두 갚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통상적인 가처분 신청과 달리 부동산의 경우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리곤 합니다. 당분간 해법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그 때까지 300여가구의 주민들은 현실적으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 지 궁금합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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