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체제를 해소할 힘은 기득권층이 아닌 아래로부터 나와야 하고 급진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집무실에서 만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벌로 상징되는 교육 불평등 구조는 지역 불평등 구조와 함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국민적 개혁과제로 꼽았다. 그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과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내면서 학벌사회 타파를 부르짖은 진보 학자였다.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으로 당선된 그는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취소 문제는 과잉경쟁을 넘어 미친 경쟁이 되고 있는 학벌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조 교육감은 우리 사회의 학벌 체제에 대해 “경쟁 시스템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많은 보상이 주어지고 패배한 사람에게는 열패감이 평생 따라 다닌다”며 “학벌과 직업에 의한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경쟁의 과잉을 낳고 과잉 경쟁은 다시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잘 사는 집의 아이들은 없는 재능도 돈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못 사는 집 아이들은 있는 재능도 계발하지 못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장기적 사회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는 “어느 사회나 사회 구성원들을 열심히 일하게 하기 위해 일정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쟁은 경쟁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의 고통스러운 경쟁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이 왜곡 변질돼 학벌사회로 연결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후진국에서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거둔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사람에게 교육이 기회의 통로였고, 교육이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합리적인 방법이었다는 믿음이 지금도 남아있다”며 “그로 인해 교육에 의한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은 그 특권이 유지되길 바라고 거기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현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서로 공부를 더 잘하려 경쟁하는 배경이 학벌체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대안도 나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산업화 시대가 지나고 지식을 창출해야 하는 시기에 지금과 같은 구시대적인 교육으로는 창의적인 인재가 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학교 현장 바깥의 제도적 실험으로 전국 국립대학을 하나로 묶어 공동 학위수여를 수여하고, 교수들을 순환 교류시키는 통합국립대학안에 주목한다”며 “서울대에 들어가는 3,500명이 되기 위한 경쟁을 3만5,000명으로 완화 시키면 그만큼 입시 경쟁을 줄여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개혁도 크게 보면 사회개혁, 정치개혁”이라며 “노동 시장에서는 학력별 임금격차를 깨뜨리는 지원책이 나오고 장인적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실기 교사가 되는 통로도 만들어주는 등 일종의 일탈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교육감은 대학서열화 체제의 변화를 위해서는 초ㆍ중등 교육의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 현장이 기존의 학벌 중심 입시 경쟁 체제에서 벗어나 이탈적ㆍ대안적 교육 시도가 있어야 한다”며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행복교육 등을 거론했다. 외부적인 변화도 필요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신적인 교육이 뒷받침 될 때 학생들의 능력과 창의력이 존중 받는 통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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