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을 머슴으로 아는 오너일가
대한항공 사건은 그런 행태의 하나
경영수업만큼 중요한 건 ‘인성교육’
10여 년 전 한국에 처음 온 IMF의 한 간부는 일정이 잘 맞지 않아 늘 타고 다니던 미국 항공기 대신 대한항공편을 이용했다. 비서가 KAL이라는 항공사가 있는데 이거라도 타시겠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타 보니 깨끗하지 기내식 서비스 좋지 승무원들 다 젊고 예쁘지 대만족이었다. 그는 그 다음부터 대한항공의 단골 고객이 됐다.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운영해온 ‘국적기’ 대한항공은 오늘날 항공기 148대로 국내 12개 도시와 45개국 125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는 세계적 항공사다. 외국인들 중에 단골손님이 많다. 그런 항공사가 창업주의 3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으로 큰 위기에 빠졌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회사와 나라 망신을 자초한 이 사건은 우발적이고 단순한 개인적 추문이 아니다. 대한항공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 재벌 2, 3세들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으로 비뚤어진 행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출발한 비행기에서 승무원을 내리게 한 것과 비슷한 일이 있다. 한 대기업의 회장(그는 재벌 2세다)은 무엇엔가 기분이 상했는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임원을 고속도로에 내려놓고 가버렸다고 한다. 평소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는 악평을 듣고 있는 사람이다.
재벌 2, 3세들의 되바라지고 못된 행동은 일일이 예를 들 것도 없다. 부모 잘 만나서 ‘금 수저 물고 태어나’ 아무 기여나 성과도 없이 20~30대에 임원이 된 그들은 임직원들을 종이나 머슴으로 생각한다. 창업자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일하는 원로 임원들에게 “그동안 우리 아버지를 이런 식으로 보좌해왔습니까?”하고 따졌다는 2세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모욕을 당한 기분이 들 정도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는 오너의 탁월한 경영감각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또 ‘임직원과의 약속’ 중 맨 처음 나오는 말은 “임직원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겠다”이다. 뭐가 임직원 존중이며 뭐가 탁월한 경영감각인가?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격려는커녕 잔소리와 지적사항이 많아 오너 일가를 모시는 걸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현재 국내 주요 재벌 대다수가 2, 3세 경영체제이며 일부는 4세 경영을 시작했다. 창업정신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후계세대의 덜 떨어지고 경망스러운 행태와 경영갈등 상속분쟁을 비롯한 각종 추문이 어지러울 뿐이다. 어디 한 군데 성한 기업이 없다. 재벌의 영향력이 막대해지면서 책임도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그들의 도덕성과 책임감은 여전히 낙제점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큰 나라이며 한국의 기업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으나 오너와 후계세대의 행태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격이다.
경영수업과 함께 인성교육부터 해야 한다. 외부인사 초청특강은 임직원들보다 오너일가가 먼저 들어야 한다. 무턱대고 전무 상무 부사장에 앉힐 게 아니라 운전기사부터 시키라고 말하는 경영전문가도 있다.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윗사람을 받들고 접대하고 대기하는 자세를 배우고 차 속에서 들은 대화를 옮기지 않는 신중한 처신부터 익히라는 것이다.
세습경영이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일률적으로 이를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1856년 창립된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집단 발렌베리 그룹은 150년 넘게 5대째 세습경영을 하고 있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발렌베리 일가를 존경한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여가 크고, ‘존재하지만 보이지 말라’는 가훈을 철저히 지키는 몸가짐 덕분이다.
그런데 우리 재벌들은 너무 크게 존재하고 군림하고 너무 자주 보여서 탈이다. 지금도 이 모양 이 꼴인데 4세 5세로 내려가면 얼마나 더 가관일까. 이제라도 사람을 만들어야 그 아래에서 사람이 나온다. 사람이 아니면 사람을 낳지 못한다. 경영승계를 준비하는 과정과 승계되는 경영철학, 기업의 조직문화를 두루 바꿔야 한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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