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과 함께 아이디어 게임 하는 바스프 회장
가까이서 바라보기도 어려운 대한항공 회장
지난 주말인 12일 오후1시30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남달랐습니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로비 1층이었습니다.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기자회견 장소로서는 어울리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현장 취재를 위해 모인 취재기자, 사진기자, 방송카메라 기자들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본사에는 강당이나 큰 규모 회의실 등도 갖춰져 있습니다. 반면 1층 로비는 음향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모인 기자들은 “조양호 회장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대한항공의 작전일 것”이라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대한항공 측이 정해놓은 포토라인(사진이나 방송용 카메라 기자들이 넘지 않도록 주최측이 취재진의 양해를 구해 쳐 놓음)은 엘리베이터 바로 앞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한 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을 하면 취재들과 마주치거나 기자들로부터 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받을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날 대한항공 측 작전은 일단 성공한 듯 보입니다. 조 회장은 미리 준비한 짧은 성명서를 읽고, 기자들의 5개 질문에 대해서도 “제 잘못”이라는 식으로 ‘무작정 덮기 식’ 답변만 되풀이하고 곧바로 자리를 떴습니다. ‘땅콩 회항’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큰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오후3시) 바로 직전 ‘아비’로서 자신의 탓이 크다는 기자회견을 통해 딸의 허물을 조금이나마 덮으려는 여론 달래기 목적의 일방적 회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뻔한 수를 언론이 모를 리 없죠. 당연히 현장의 취재진이나 여론은 ‘때도 늦은데다 생색내기용’ 회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자는 조 회장의 약삭빠른 기자회견을 취재하면서 바로 일주일(현지시간 4일) 전 세계 1위 화학회사 독일 바스프(BASF) 본사에서 만난 쿠르드 복 바스프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쿠르드 회장은 내년 창립 150주년을 앞두고 바스프가 진행 중인 기념 행사를 설명하고 그룹의 미래비전을 설명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 온 70여 명의 기자들과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쿠르드 회장은 기자회견을 마치고도 자리를 뜨지 않은 채 세계 각국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서 회견 장 바로 옆에서 부대행사로 진행된 ‘미래 교통수단을 위한 아이디어 모으기’ 프로그램에 참석 기자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아이디어를 주고 받고 그림 그리기 등 꾸미기에도 참여했습니다. 기자들은 쿠르드 회장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요. 그는 이후 홍보책임자 외엔 따로 수행원 없이 기자들과 함께 음식을 떠서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얘기를 나눴습니다. 쿠르드 회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9월 메르세데스-벤츠가 속한 다임러 그룹의 디터 제체 회장도 벤츠의 고성능 브랜드 ‘AMG’의 신차 발표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같이 줄을 서서 음식을 접시에 직접 받고 밥을 먹으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쿠르드 회장과 디터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기자는 평소 수 많은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먼 발치서 바라만 봐야 하는 한국 대기업 회장님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의 장막’ 밖에 있는 회장님은 그 자체가 권위주의, 제왕주의를 떠오르게 합니다. 회장 스스로는 기자들과 만나 얘기를 하고 싶어도 비서팀이나 수행팀에서 이를 알아서 막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를 겪을 때마다 되려 ‘뭔가 감추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만 커집니다. 좋든 싫든 외부와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모습이 그 회사와 브랜드의 이미지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외부와 연결고리를 끊은 채 ‘우리 제품, 서비스를 잘 사기만 하면 된다’는 일방주의적 자세를 유지할 것인지 답답할 뿐입니다.
기자는 지난주 바스프의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회장을 저렇게 노출시켜도 되는 것이냐”고요. 그랬더니 그는 “다소 거칠고 불편한 질문이라도 여과 없이 다 듣게 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언론에게도 회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며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우리를 바라보는 외부 여론이 어떤지 체감하게 되고, 언론은 CEO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의 진심을 알게 될 수 있어 회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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