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속 경영수업만으론 안 된다' 공감대 확산
현장근무 필수코스로…조기 승진보다 실무 배우기 주력
자원입대·장교지원…"특권의식 버려야 오너십 정립"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주요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오너가 자제 단속에 나서는 분위기이다.
오너가 2∼4세들이 지나치게 '온실 속 경영수업'만 받다 보니 기업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져 그만큼 오너 리스크가 커진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업 내부적으로는 장차 경영권을 행사할 오너 출신들이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불만도 간간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또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임원 자리에 오르고 초고속 승진만 거듭한 탓에 조직원들의 고충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제2의 조현아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오너가 아들·딸들에게 '하드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현장 근무를 오너가 경영수업의 필수 코스로 넣는 등 분위기를 바꿔나가고 있다.
이중 국적에 따른 군 면제 등이 사회문제로 제기되면서 현역 자원입대를 하도록 권유하는 사례도 종종 나오고 있다.
중견 직원이 되기까지 임원으로 승진시키지 않고 차장·부장 등으로 두면서 현장 실무를 배우도록 하는 사례도 있다.
재벌가 딸 가운데 처음으로 군 장교로 입대해 화제를 모은 최태원 SK 회장의 차녀 민정(23)씨가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해군 사관후보생 117기로 입영한 민정 씨는 11주간의 장교 양성교육을 마치고 최근 임관식을 했다. "대한민국의 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힌 포부도 화제가 됐다.
민정 씨는 오래전 해군에 입대하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시험을 준비해왔다.
중국 베이징 유학시절에도 부모에게서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나 입시학원 강사 등으로 생활비를 조달해왔다.
최신원 SKC 회장의 외아들인 성환(34)씨는 2006년 중국 푸단대를 졸업한 뒤 해병대에 입대해 복무했다.
현재 SKC 상무로 근무 중인데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신원 회장은 임직원들과 해병대 극기훈련을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기선(32)씨는 2005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서 학군단(ROTC) 43기로 임관해 육군 특공연대에서 복무하고 2007년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색다른 사회경험을 쌓는 데 주력해 1년간 중앙일간지 인턴기자에 이어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다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경영자문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지난해 6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옮겨왔고 최근 상무로 승진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외아들 남호(39)씨는 승진이 늦은 대표적인 사례다.
남호 씨는 우리 나이로 마흔이지만 아직 동부팜한농 부장 타이틀을 달고 있다.
김 회장이 이른 승진보다는 철저하게 경영수업을 받을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군대도 전방 포병부대 근무로 병장 제대했다.
동부제철로 처음 입사했을 때는 당진제철소에서 현장근무도 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돌아보면서 현장 업무를 섭렵하기 위해 2012년부터 동부팜한농에서 일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외아들 윤홍 씨는 GS건설 플랜트공사 담당 상무로 일하고 있지만 과거엔 주유원 근무 경력도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2002년 GS칼텍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3개월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주유원으로 일했고, 이후에도 10년간을 현장에서 일했다.
2005년 1월 GS건설로 옮기고 나서 2007년과 2009년 과장과 차장, 2010년 부장을 거치며 건설사의 핵심 부서를 두루 경험하는 것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1989년 대학을 졸업하자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태워 보낸 일화로 유명하다. 김 부회장은 배를 타고 하루 16시간씩 4개월 남짓 태평양을 누비며 선원 생활을 했던 것이 경영철학의 밑바탕이 됐다고 회고한다.
이런 전통으로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도 대학졸업후 청량리시장 영업사원으로 배치받아 3년6개월을 일한 뒤 다시 창원공장에서 참치 통조림 포장과 창고 야적 일 등을 경험해야 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36) ㈜LG 시너지팀 상무도 올해 1월부터 몇달간 창원공장에 배치돼 일한 경험이 있다.
최근 상무로 승진한 광모 씨는 LG전자 가전 생산의 메카인 창원사업장 현장라인에서 구매, 생산, 품질검사를 조율하는 기획관리 담당으로 일해 매일 같이 현장 상황을 돌아봤다고 한다.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의 외아들 이규호(31) 코오롱글로벌 부장도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한 직후에는 구미공장에서 현장 근무를 경험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장남 박서원(36) 오리콤 CCO에게 철저히 혼자 힘으로 사업을 해보도록 하다가 최근 그룹의 광고책임자로 받아들였다.
세계 광고인들의 등용문인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출신으로 서원 씨는 2006년 독립광고회사인 빅앤트를 설립해 두산그룹 계열 광고회사인 오리콤과 별도로 홀로서기를 했다.
미혼모 방지 사회공헌사업을 하기도 하고 반전 테마 광고작품으로 국제광고제를 석권하는 등 튀면서도 독립적인 오너가의 모습을 보여줬다.
재계 관계자는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전 사회적으로 반재벌 정서가 확산될까 우려된다"면서 "일부 기업들의 비뚤어진 오너십을 바로 잡고 오너들이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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