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만기 도래 주담대 42조원
연체율 늘며 적자가구 파산 우려
은행권 일제히 대출 속도 조절


폭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출구전략이 금융권 전반에서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전반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서며 통화완화 기조에 제동을 걸 조짐이고, 은행권 역시 가계대출 증가폭 제한 방침을 세웠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초이노믹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어정쩡한 행보를 보이는 이유다.
가계대출 출구로 달려가는 금융권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섰던 한은은 전 금융권의 가계부채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3월말 가동을 목표로 전산개발 작업이 진행 중인 이 시스템은 신용평가사 두 곳이 분기별로 제공하는 자료를 토대로 운용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와 관련, 최근 “과거처럼 작은 규모의 표본 조사가 아니라 다수의 가구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장기적ㆍ구조적 차원의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하려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도 자체적으로 대출 속도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가계대출 증가율이 지난해 대비 12.5%로 은행권 최고였던 우리은행은 내년도 증가율 목표를 올해의 절반 수준인 5%대 후반으로 설정했다. 국민은행 역시 가계대출 증가율을 올해 9.3%에서 내년 5%대 후반으로 낮춰 잡았고, 신한은행은 8%대에서 5%대 초반, 농협은행은 6.9에서 3.3%로 각각 조정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실과 위험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미하긴 하지만 금융당국도 상호금융권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내놓았다. 예탁금 비과세 혜택을 단계적으로 줄여 과도한 수신을 억제하는 한편, 상가ㆍ토지 등 비주택 담보대출에도 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하고 동일인 대출한도를 도입하는 등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내년 주담대 만기 50조원 “위기 임박”
금융권이 속속 가계대출 관리에 나선 이유는 내수 활성화라는 정부의 정책 구상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주택시장 활성화→자산(주택)가치 상승에 따른 소비여력 증대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집값은 주춤한 채로 생활자금이나 자영업 자금 등으로 대출금이 흘러 들고 있다는 것이다. 장민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구입을 위한 담보대출은 LTVㆍDTI 완화 이후 되레 떨어지고(51%→47%), 생활자금 마련 등을 위해 기존 담보주택에서 추가 대출하는 비중이 늘어났다(37%→42%)”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가계의 부채 상환능력도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 가처분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19.1%에서 올해 21.5%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0.63% 수준이던 가계대출 연체율 역시 올해 들어 0.71%(8월), 0.65%(10월)를 기록하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계빚 증가가 되레 내수 침체를 심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가계부채 급등세가 지속될 경우 저소득, 자영업자 가구 등 적자가구 비중이 30~40%에 이르는 취약계층의 파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만기가 짧고 일시상환 비중이 높은 가계대출 구조도 부실 위험을 높이고 있다. 김지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계약기간이 3년 이하인 비율이 18%, 만기 일시상환 계약방식이 30%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42조원, 2금융권을 포함할 경우 50조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건 ‘초이노믹스’다. 가계대출이 출구를 향해 속도를 내는 경우 급격히 식어가고 있는 경기, 특히 부동산 경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 소지가 큰 탓이다. 정부 고위 인사는 “경기가 식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돈 풀기를 멈출 수도, 그렇다고 경고음이 점점 커지는 가계대출에 대한 출구전략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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