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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해야 할 일

입력
2014.12.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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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나 지위 고하, 부의 크기 등을 막론하고 한국 아버지의 세습 욕망은 유난하다. 어떡하면 자식한테 재산과 학력을 충분히 물려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한 나머지, 품성ㆍ도덕 훈육엔 소홀하기 십상이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하늘길 대한항공 본사에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인 장녀 현아씨 대신 사과하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직업이나 지위 고하, 부의 크기 등을 막론하고 한국 아버지의 세습 욕망은 유난하다. 어떡하면 자식한테 재산과 학력을 충분히 물려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한 나머지, 품성ㆍ도덕 훈육엔 소홀하기 십상이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하늘길 대한항공 본사에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인 장녀 현아씨 대신 사과하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본래 부재한 존재가 아버지다. 대신 권위로 가부장은 편재한다. 훈육보다 보호가 급선무다. 세습도 긴요하다. 하지만 얼마나 허망한가. 반칙도 불사한 부정이 결국 원망으로만 남으면.

“‘땅콩 회항’ 사건에도 수많은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들도 최선을 다했다. 당사자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버티다가 첫 보도 5일 뒤 사과했고, 회사 임원들은 최선을 다해 증거를 인멸하고 피해자를 협박했다. 국토교통부의 공무원들은 최선의 무능과 거짓말 릴레이를 선보였다. (…) 재벌 자녀의 일탈로 바라보기엔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너무 많은 치부를 드러냈다. 근본은 아버지의 부재다. 최소한의 상식을 지킨 아버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내 자식은 나 덕분에 누려도 된다는 오만, 적어도 내 아들딸은 회장 자식만큼은 아니더라도 남들보다 윗자리에 서길 바라는 욕심, 자녀에게 돈과 힘을 투입할 자리 보전을 위해 정의나 상식 따위 잠시 유보해도 된다는 착각이 사건 곳곳에 스며있다. 어쩌면 우리 역시 가정에서 제2의 조현아를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 물리력으로 급우를 괴롭히는 아이, 물질로 노인을 괄시하는 젊은이, 계급으로 하급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군인, 사회적 지위로 성추행을 하는 교수, 모두 누군가의 자녀들이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돈과 권세, 말을 통해 배우지 않는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 배울 뿐이다. (…) 우리는 아버지로서 떳떳한가. 조롱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더 버리느니 우리의 뒤를 살피자. 그게 땅콩 회항 사건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값진 교훈이다.”

-아버지의 죄가 더 크다(한국일보 ‘36.5°’ㆍ고찬유 경제부 기자) ☞ 전문 보기

““다사다난.” 세월호 참사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이르기까지 그 말이 전혀 상투어가 아닌 2014년이다. 그런 한 해를 보내며 짚을 일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가 삼성에스디에스와 제일모직 상장으로 10조원에 이르는 차익을 거둔 일이다. (…)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의 삶을 묘사할 길은 여러 갈래겠지만, 상속세와 증여세를 피해 세 자녀에게 기업 지배권을 고스란히 물려주려는 상속의 열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려주고자 한 부의 크기가 대단했던 만큼 제도의 허술함을 파고든 것을 지나 그것을 일그러뜨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이 회장을 두고 “자식에게 물려줘서 뭐할 거냐”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상속 과정의 불법성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많아도 그 동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상속의 열정이라는 면에서 우리 모두가 이 회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서 아닐까? 재벌 회장에서 가난한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재산 아니면 학벌ㆍ학력이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심성의 밑에는 식민지, 전쟁 그리고 분단의 경험이 깔려 있다. 공적 삶이 불온함의 위험 아니면 사적 이익 추구로 양분되어버린 경험 말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적 삶을 생로병사의 자연적 리듬이 지배하는 곳으로 내버려두고 존재의 중심 의미를 공적 영역에서 찾는 태도가 잘게 부서져 버린다. 게다가 뒤이어 급속하게 진행된 자본주의적 발전은 그런 가치관의 잔여마저 맷돌처럼 갈아버렸다. 그 결과 개인은 무도덕적 가족주의 속으로 퇴행했고 유한성을 넘어선 삶을 향한 비전은 상속의 열정으로 오그라들었다. (…) ‘땅콩 회항’ 또한 이런 일들과 그리 멀리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조현아씨의 행태는 상속의 열정이 어떤 심성을 가진 자녀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거니와, 조현아씨가 국토교통부에 조사를 위해 출두할 때, 조양호 회장이 했던 사과 성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식의 잘못을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돌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깊은 자정(慈情)의 발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식이 마흔이 넘은 대기업 임원이라면, 그건 자식이 내딛는 발걸음마저 디딤돌을 놓으려 하고 더 나아가 자식의 묫자리마저 챙겨줄 듯이 부풀어 오른 상속의 열정의 징표이다.”

-상속의 열정, 삼성ㆍ청와대ㆍ땅콩 회항(12월 25일자 한겨레 ‘세상 읽기’ㆍ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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