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늘 원대한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깨끗하고 선진적인 정치가 이끄는 한국사회를 그리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정치의 변화, 쉽지 않은 요구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개혁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이는 정치권에 선거구 위헌판결은 개혁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더구나 내년에는 총선, 후년에는 대선이 있지만, 올 해는 전국적인 선거가 없어 차분하게 개혁을 추진할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선거제도의 개혁은 국민들의 지지를 공정하고 왜곡되지 않게 의석으로 전환시키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치적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비례성을 높이며, 선거구민의 대표성을 향상시키며, 그리고 공정하고 투명하며 저비용의 선거를 만들기 위해서 추구된다. 정치개혁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선거제도 개혁을 논하게 되는 것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서 현재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와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제도이다. 소선거구제라는 다수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선거제도는 불비례성이 매우 높으며,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제도이다. 소선거구제는 ‘만들어진 다수’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때문에 거대정당들은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획득하는 이득을 보는 반면에, 군소정당들은 득표율보다 과소 대표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전체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효과가 미약한 상황이며, 그나마도 그 비중이 점점 축소되어 왔다. 더욱이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적 정당이 특정지역에서 의석을 독점하게 만들었으며, 지역정서에 반하는 정당들의 일상적인 정당활동을 위축시키고 정당활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낳았다. 그리고 전국 단위의 비례대표제는 공천문제로 항상 갈등을 빚어왔고, 계파정치를 조장해왔다.
그래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은 지역정당체제를 완화시키고, 정책정당과 정치신인의 의회진출을 용이하도록 비례성을 높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비례성을 제고하는 방안으로는 독일식 선거제도와 같이 전면적인 비례대표제의 실시하거나,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의 비중을 높이거나, 소선거구제보다 비례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견해로 압축된다.
독일식 제도로의 개혁은 선거제도의 ‘혁명적 변화’이고 개혁의 효과를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실현가능성이 매우 미약하다고 생각된다. 중대선거구제는 일본의 경험처럼 정책선거보다는 파벌정치, 금권정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개혁의 효과는 덜하지만 비례대표의 비중은 높이는 방안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비례대표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비례대표의 의석을 얼마만큼, 어떠한 방법으로 증원하느냐의 문제이다. 또한 비례대표 비중의 확대는 상향식 명부작성의 제도화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비례대표를 현행처럼 전국단위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권역을 나누어 선출하는 방안도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여러 ‘꼼수’를 거론하고 있어 실망을 주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선거제도의 ‘변경’이 아니라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개혁은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 놓는 데에서 시작된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치개혁이 어려운 것은 바로 정치개혁의 대상인 정치권이 정치개혁의 주체라는 딜레마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구 획정이나 선거제도 개선을 외부 전문기구에 맡기고 정치권은 이를 이의없이 수용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면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소선거구를 늘려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비례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과 공천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정수 조정 문제가 제기된다면,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정치권 개혁안이 전제된 개선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올 상반기는 선거개혁을 통해 정치변화를 이끌 중요한 시기이다. 정치권, 학계, 언론, 시민단체의 지혜를 모아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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