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김정은 국정 성과 필요, 양측 전향적 자세 여건은 우호적
北 대북 제재조치 해제 등 요구 南 흡수통일론에 가깝게 행동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실제 성사 가능성이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는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당국간 대화에서 정상회담을 논의하겠다며 북측에 호응했다. 남북이 단계적 대화 재개를 통해 의제를 조율해간다면 8월 이전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상회담 열린다면 언제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고위급 접촉 재개 ▦부문별 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단계적으로 남북대화를 이어가 여건이 마련된다면 남북정상회담까지 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 대통령도 구랍 29일 ‘2014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새해에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좀 더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안팎에서도 2015년 남북관계 급진전을 위한 갖은 방안들이 논의되는 중이었다. 박 대통령이나 김정은 모두 집권 3, 4년차 안정기를 맞아 국정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남북 모두 정상회담 개최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이라 여건은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명의의 당국간 대화를 공식 제의했던 정부는 북한 신년사 발표 직후 이를 접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당국간 대화로 선회했다. 북한이 제시한 정상회담 기회를 잡겠다는 것이다. 설 전후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고위급 접촉 등의 당국간 회담 재개 수순이 예상된다. 1월 중순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예정된 만큼 여기서 대북 제의가 나올 수도 있다.
남북이 주고받는 조율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1월 중순에서 2월 초 사이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고, 2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키 리졸브 합동군사훈련이 예년보다 완화된 수위에서 진행되고, 대북 전단살포 등도 중단되면서 이산가족 상봉행사까지 성사되는 낙관적 시나리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8월 15일 광복 70주년,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등 남북 모두 특별한 일정이 예정된 만큼 그 이전에는 정상회담이 이뤄져야 한다”며 “3, 4월 중 고위급 대화, 남북 특사 상호 교환방문 등이 이뤄지면 6월쯤 정상회담 개최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행사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 뒤 서울, 평양 등에서 정식 정상회담을 갖는 수순도 예상하고 있다.
2차례 정상회담 경험으로 속도 낼 수도
2000년과 2007년 이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적이 있는 만큼 정상간 만남을 위한 절차 조율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2000년의 경우 3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 지원 및 남북 당국간 대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곧바로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네 차례 남북 특사접촉을 마친 뒤 한 달만인 4월 10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발표됐다. 이어 남북 준비접촉, 실무접촉 등을 가진 뒤 6월 정상회담이 열렸다.
2007년의 경우도 남북 장관급회담, 장성급군사회담 등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8월 남북 특사접촉, 실무접촉을 갖고 10월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이번에도 남북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기 위해선 여러 채널의 대화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7년 동안 남북관계가 냉각기였던 만큼 과거 정상회담 때와 달리 예열을 충분히 해야 정상회담까지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 정상회담까지 걸림돌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남북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북한은 5ㆍ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및 금강산관광 재개 등의 선결 과제 해결을 요구했고, 남측은 ‘통일대박론’을 제기하면서도 ‘흡수통일론’ 쪽에 가깝게 행동해왔다.
최근 한 달 새 당국간 회담 제의, 신년사 정상회담 언급 등으로 남북관계가 단기간에 급히 달아올랐지만 근본적인 여건은 여전히 냉탕이다. 정부도 이날 정상회담 제의에 대해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것을 평가한다”는 중립적인 반응만 보였다.
정부는 일단 당국간 회담이 열리면 5ㆍ24 조치를 비롯해 모든 의제를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이 통준위 명의 회담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회담 형식부터 간극 조정이 필요하다. 김정은을 아직 북한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남측 일각의 인식도 정상회담 성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상회담 개최까지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남북간 우발적 군사 충돌, 개성공단 등에서의 남측 민간인 신변 이슈 등 돌발변수가 발생한다면 언제든 급랭 국면으로 돌변할 수 있다. 2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나 삐라 살포 재개도 북한의 시빗거리다. 북미관계 악화에 따른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의 외부 변수도 있다.
따라서 남북 양측이 장기간에 걸쳐 세세한 의제 하나하나를 다루는 실무급 회담에 집착하기보다는 ‘정상회담에서 모든 의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대승적 자세로 나설 경우에나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남북의 관계개선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북간 상존하는 북한 핵, 인권, 흡수ㆍ제도통일 등의 의제 때문에 상황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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