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반지하ㆍ자전거 상점 2층...
색다른 전시공간 곳곳서 탄생
성과 통합 위한 좌담회 등 노력도
지난해 말 서울 상봉동 ‘교역소’에는 미술 애호가 150여명이 몰려들었다. ‘젊은’ 미술 공간 운영자들이 2015년의 방향을 예측하고 2014년의 성과를 점검하는 ‘안녕 2014, 2015 안녕?’ 좌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 그 어디에서도 전시공간을 쉽게 확보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은 아예 독자적인 전시공간을 찾는 방법을 택했다. 이들의 성과를 하나로 묶기 위해 ‘청춘과 잉여’전을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팀 유능사가 좌담회를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새로운 미술 공간이 서울 곳곳에서 탄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청각’과 ‘커먼센터’는 작품을 전시하기 좋은 공간이 아니다. 통인동 시청각은 한옥을, 문래동 커먼센터는 폐건물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했다. 시청각의 공동운영자 현시원 큐레이터와 커먼센터 운영자 함영준 큐레이터는 “기존 전시공간에서 전시를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어렵게 찾아낸 공간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술회했다. 조건은 좋지 않지만 전시 내용에는 신선한 매력이 있다. 특히 커먼센터에서 젊은 작가 69명의 회화 148점을 모아 전시한 ‘오늘의 살롱’전은 큰 화제가 됐다.
상봉동 ‘반지하’와 ‘교역소’는 전시에 새로운 문법을 도입했다. 이름 그대로 주택가 반지하방을 2012년부터 전시공간으로 개조해 운영하는 반지하는 ‘오픈베타공간’을 표방한다. 작가가 본격 전시에 앞서 자신의 작품이 실제 전시공간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실험하는 장소라는 의미다. 반지하는 익명성을 중요시한다. 이메일과 트위터로 전시 및 방문 예약을 받는다. 전시하는 작가가 누군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관리자들도 공간만 관리할 뿐 전시 내용을 평가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는 ‘대나무숲’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익명성을 강조한 ‘관리자1’은 “이미 올해 10월까지 전시 일정이 잡혀 있다”고 밝혔다.
‘교역소’는 자전거 상점 2층을 임대해 타임테이블을 짜고 페스티벌처럼 전시를 열었다. 작가들은 영상, 공연, 강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짧은 시간 안에 돌아가면서 작품을 선보였다. 교역소란 이름에는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지켜보고 의견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지만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던 작품들이 현실 속 공간과 일시적으로나마 조우해 새로운 힘을 얻기를 바란다는 의미도 있다. 교역소에서 ‘미술의 아토포스를 바라며’라는 강연을 열었던 김용익 작가는 “교역소가 시한부 임대공간, 옥상공간이라는 특수한 여건 속에서 기존 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술을 발견해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아쉽게도 이날 모임은 젊은 미술가들의 작업 전반을 비평적으로 분석하는 자리가 되지 못했다. 커먼센터에서 열렸던 ‘오늘의 살롱’전과 ‘청춘과 잉여’전에 대한 간단한 검토가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젊은 작가와 기획자 자신들의 움직임을 보편적 미술담론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앞으로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러나 새로운 미술공간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한국의 기존 미술계가 충족하지 못한 욕구에 대응하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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