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 수수·폭력 사범 줄었지만 허위사실 유포·흑색선전 등 급증
후보들 공약 막판까지 미루기만, 유권자들은 확인조차 어려워
최근 3년간 치러졌던 두 번의 서울시장 선거는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6ㆍ4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였던 정몽준 전 의원측에서 선거 막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였던 박원순 서울시장 부인을 겨냥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의 친분설 및 잠적설 등을 잇따라 제기하며 세몰이에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011년 10ㆍ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는 도전자 입장이던 박 시장측에서 일부 언론을 통해 제기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의 1억 피부클리닉 이용 의혹에 불을 붙였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공직선거에서 네거티브 운동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러면서 후보들간 정책과 비전 경쟁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과거 금품과 폭력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면 최근에는 네거티브를 가장한 허위사실과 상대 후보 비방 등 흑색선전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대검이 취합한 2010년(5회)과 2014년(6회) 지방선거 사범을 유형별로 보면, 허위사실공표 및 후보자 비방 등 흑색선전으로 입건된 인원은 5회 774명, 6회 1,325명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정책 준비 부족이 1차적 원인
선거에서 정책과 비전이 실종된 데는 1차적으로 정치권의 준비 부족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평소 꾸준히 정책과 비전을 준비하기 보다는 선거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내놓다 보니 유권자들을 '깜감이 선거'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ㆍ4 지방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은 선거 보름 전에야 각 당의 공약을 비교할 수 있었다. 중앙선관위는 당초 선거를 한달 여 앞둔 5월 5일까지 주요 정당의 10대 정책 및 시도별 5대 핵심 공약을 선관위 홈페이지를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주로 야권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국민안전 대책을 추가로 반영하겠다며 지체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의 공약 확인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선도 크게 다를 바 없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측 최종공약집은 선거 20일전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일부 공약들은 사전에 발표했지만, 노동과 국방 분야 공약 등은 공약집 발간 전까지 알려지지 않아 유권자들은 광범위한 공약 내용을 비교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민주당 후보 공약집 모두 선거를 보름 여 앞둔 12월 초에나 나왔다. 정치 전문가들은 "전당대회에서 후보 선출과 동시에 공약집을 내는 미국 등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법과 제도의 제약 및 정치 지형의 문제
정책과 비전 선거를 어렵게 하는 구조적 요인도 상당하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선거 및 지방의회의원선거 후보자들은 선거공약집을 낼 수 없다. 대통령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나서는 후보자들이 예비후보 등록 시점부터 공약집을 발간ㆍ배부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개선요구가 꾸준하지만 관련법은 여전히 여의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선거 입후보자들과 유권자들이 정책을 놓고 쌍방향 논의를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제한된 현실도 정책 선거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제한적으로 언론기관 등을 통한 대담 및 토론회가 열리고 있지만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는 전혀 불가능하다. 후보자가 직접 유권자들을 모아 정책토론을 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 금품 및 향응 제공 등 부작용을 우려해 빗장을 걸어 둔 것인데 유권자의 의식 수준 향상과 맞물려 전향적으로 개선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거대 양당 중심의 정당시스템도 구조적 제약요인 중 하나다. 양대 정당이 갈수록 다원화하는 사회 각 분야의 목소리를 모두 흡수해 정책으로 녹여 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양당제 하에서는 후보가 누구인지 보다 정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며 “정당 충성도가 당락을 좌우하는 구조에서 정책 비전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책실종 틈새를 파고드는 네거티브
건강한 선거운동 문화가 실종된 틈바구니를 네거티브가 파고 드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정치권에서는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효율성'으로는 네거티브를 최고로 치고 있다. 야당 한 초선 의원은 “ 'all or nothing' 선거 분위기에서 짧은 시간 유권자들에게 흡수력과 전달력이 빠른 네거티브 전략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선거 때만 되면 소위 '꾼'이라고 불리는 브로커들이 상대 후보를 공격할 포인트를 들고 와 흥정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네거티브 전략도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근절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관성화된 유권자와 언론이 네거티브전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도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 전에 따라 지지율 증감 추세가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 눈으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급속한 확산으로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공간도 확대되고 있지만 네거티브전에 악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6ㆍ4 지방선거 당시 서울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고승덕 변호사의 딸이 SNS를 통해 고 변호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고, 이 글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선거 결과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던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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