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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영한 항명 파동의 책임론

입력
2015.01.1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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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시정잡배들이 모인 집단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저잣거리에서 ‘개판’이라는 속된 말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노릇이다.

김영한 전 검사장을 청와대가 홍경식 민정수석 후임으로 발탁했을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국민여론과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는 민정수석의 업무를 감안해 역대 정부는 주로 검사 출신을 기용했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서 업무를 조정할 수 있도록 고검장 급에서 인선하는 게 지난 정부부터 관례였다. 헌데 김 전 민정수석비서관은 수원지검장과 대검 강력부장(검사장급)을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난 인물이다. 검사 시절 맥주병으로 기자를 폭행한 전력까지 감안할 때 그의 민정수석 인선은 상당히 의외였다.

하지만 이번 항명 파동이 오로지 김 전 수석의 개인적 돌출행위나 기행에서 비롯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선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직속상관이 비서실장이라는 점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인선의 책임부터 져야 한다. 이번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제외하고는 두 명 모두가 사실상 김 실장이 낙점한 인물인데 둘 다 불명예 퇴진했다. 김 실장의 선구안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애초 김 실장이 민정수석의 대단한 역할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전임 홍 수석에 이어 김 전 수석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가 극도로 제한됐다는 후문이고 보면 민정수석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 보고는 비서실장의 고유 영역이며 최근 들어 김 실장이 검찰총장에게 직접 지시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말까지 들리는 상황이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김 실장이 청와대와 법무ㆍ검찰을 연결하는 중간 단계를 둘 이유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전 수석 입장에서는 ‘바지사장’ 노릇에 염증을 느낄 법하지 않았을까.

항명 사태 자체에서도 김 실장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전ㆍ현직을 불문하고 상명하복의 규율이 분명한 검찰 문화를 고려할 때 후배 하나 단도리하지 못한 선배로서 김 실장은 자괴감부터 느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최고 책임자가 돼서 항명하는 부하의 해임을 건의하는 일로 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말발을 비롯한 리더십에 문제가 생겼다는 결론에 도달할라치면 거취를 결정하는 게 옳아 보인다.

항명 파동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타격도 불가피하게 됐다. 직제상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직속상관은 비서실장이지만 청와대 수석의 애초 역할은 대통령을 수시로 보좌하는 개인 참모 성격이 짙다. 부처 장관들도 국정에 관한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수행하지만 청와대 경내에서 함께 근무하는 비서진의 보좌가 모든 면에서 효율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유독 비서진의 보좌에 인색하다. 여성 참모진으로 기대를 모았던 조윤선 정무수석조차 아직 박 대통령의 곁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하니 민정수석의 설 자리는 더더욱 협소했을 것이다. 비서동인 위민관에 근무하는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시도 때도 없이 본관 집무실을 찾았다는 역대 청와대 실록은 상상도 못할 일이 돼 버렸다.

이번 항명 파동 또한 박 대통령의 폐쇄적 리더십 및 불통 스타일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본관 집무실과 비서동 사이의 유리벽 때문에 수석비서관들의 접근이 어렵다면 제거해야 마땅하며 인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면 응당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을 외면하는 것은 국정 운영에 필요한 주요 자산을 낭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정 핵심 참모들이 닫힌 공간에서 근무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제2, 제3의 김영한 파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공직에서 물러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스른 적이 있지만 이번은 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항명이라는 점에서 파장의 정도를 비교할 일도 아니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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