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타당성은 가변적… 정책 판단에 너무 엄격한 잣대
초이노믹스 큰 틀은 맞다… 경기 대증요법 난무
장기판을 뜨면 훈수를 두고 싶어진다고 한다. 판이 더 잘 보인다고도 한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수선하고 여기저기서 지난 정권의 실정에 칼끝을 들이대는 상황에선 입이 간지러울 만도 하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책을 통해 나름의 훈수를 내놓았듯,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경제팀 수장의 속내도 궁금했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듯 했다. 지난 8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경제부 기자들과 마주한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은 인터뷰 내내 과거보다는 미래를 강조했다. “초이노믹스의 큰 방향도 괜찮아 보인다”고 그는 힘을 실었다. 다만 주로 대기업이 대상인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제도의 타깃과 타이밍을 우려했고 사학ㆍ군인연금 개혁안이 발표와 번복의 해프닝 속에 아예 금기사항 비슷하게 된 것은 “어설펐다”고 아쉬워했다.
우선 MB정부의 실세 장관에게 최근 조사위 발표결과를 놓고도 논란이 심한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는 MB정부 초기부터 국정기획수석 등으로 이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체 보고서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보도된 바로 보면, 4대강에 적극 찬성ㆍ반대한 사람을 제외한 70여명의 전문가가 1년4개월 간 조사한 결과다. 그 정도 규모와 기간 등을 거친 결과라면 존중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문제가 없다는 얘긴가.
“그간 4대강을 둘러싼 논란은 다소 정치 공방 성격이 강했다. 조사위가 지적한 문제들은 바로잡되 4대강은 건설ㆍ준설 등 측면만 끝났지 여전히 유지ㆍ관리 등 진행형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쪽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보를 철거해야 한다는 등의 극단적 주장은 이제 자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여론이 안 좋아지면 이후 정권도 추가 투자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부실시공 논란이 여전하지만 잘못된 점은 시정하되 홍수방지, 친수환경, 여가ㆍ문화용 시설 등 여러 측면에서 균형 있게 사업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완공된 한강 둔치에 지금도 새 사업이 벌어지지 않나. 장기적 안목에서 정부도 민간자본 유치를 위한 여건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MB정부의 자원외교 낭비 논란도 요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우리는 자원 빈국이면서 소비는 굉장히 많은 아이러니를 지닌 나라다.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숙제다.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48달러까지 치솟던 당시에 재무분석의 관점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가늠했던 것과 최근 유가가 3분의1 토막(배럴당 50달러 이하)난 상황에서의 분석은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에너지가격을 예측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 아닌가.
“한 때 골드만삭스마저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넘을 거라 예상하기도 했다. 에너지가격 시나리오에 따른 자원확보의 타당성은 가변적일 수 있다. 몇몇 실패사례만 가지고 너무 몰아 부치면 앞으로 투자하는 쪽에선 지나치게 안전 위주, 즉 가치가 별로 없는 것에 치우치게 될 우려도 있다. 투자 과정에 스캔들이나 뒷돈을 주고 받은 게 있다면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정책적 판단에까지 지금의 잣대로 너무 엄격하게 재단하는 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화두를 옮겼다. 그는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정책)에 대해 총론에는 긍정적인 견해를 내비치면서도, 각론에 대해서는 우려를 내비쳤다.
-최경환 경제팀이 잘 하고 있다고 보나.
“큰 틀에서 방향은 괜찮다고 본다. 작년에 내놓았던 정책들은 다분히 경기대응에 무게 중심이 있었지만 올 해는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춘 걸로 이해 된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여러 문제는 큰 틀에서 고령화 등 구조적 흐름의 과제와 경기순환이 등락을 거듭하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둘 모두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작년엔 세월호 여파 등으로 우선 경기대응이 불가피했다면 올해는 구조개혁이 긴요한 시점이다.”
-방향 설정과 실현 가능성은 다른 얘기일 수 있다. 최 부총리 스스로도 구조개혁과 경기활성화를 ‘두 마리 토끼’가 아닌 ‘사자’라고 어려워하던데.
“여러 구조개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개혁이다. 정년 연장은 일단 정리가 됐지만 지금 임금체계 개편, 휴일근로와 보상 등 동시다발로 여러 이슈가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정부는 일괄 타결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결론이 내려져야 기업들도 사람을 뽑든지, 임금을 조정하든지 움직일 수 있다. 또 기업 경영상 수많은 변수를 고민하는 중에 노동 측면에서 하나의 상수가 너무 경직되게 등장하면 다른 모든 조합이 어긋날 우려도 있다. 참 어려운 문제다.”
-노동개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뿌리 깊은 갈등도 넘어야 한다.
“노동 시장의 각종 격차 문제도 중요한 현안이다. 가령 초이노믹스가 추진 중인 기업소득환류세제의 주요 타깃은 1차적으로 대기업인데, 대기업은 저마다 편차는 있지만 지금도 중소기업에 비해서는 보상을 잘 받고 있는 편이다. 이들에게 새 세제를 통해 임금을 올려주면 대ㆍ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임금을 올리는 식의 인센티브나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내려지는 제재 시스템의 타이밍이 과연 적절한 지에 대한 걱정이 분명히 있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사학ㆍ군인연금 개혁 방안이 발표됐다 서둘러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브리핑까지 하고 곧바로 철회ㆍ번복한 것은 매끄럽지 못했다고 본다.”
-결국 모든 연금개혁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인데.
“고령화 추세 등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결국 개혁을 피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다만 공무원연금에 비해 사학연금의 적자 수준은 다소 덜하고 군인연금은 직역상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번 반발이) 전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전체 경제정책에 총론을 넣어두는 정도는 괜찮았을 걸로 보는데, 이번 번복 과정을 거치며 마치 사학ㆍ군인연금 논의가 금기사항 비슷하게 굳어진 것 같아 결과적으로 상당히 어설픈 대응이 됐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생활을 꽤 했으니 본인도 연금 대상자인데, 최근 개혁 논의가 억울한 생각은 안 드나.
“국민들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측면이 있다. 공무원연금엔 퇴직금 성격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의견수렴이 충분히 돼야 한다고 본다.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연금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과 진단이 아직 부족하고 국민들도 깊이 알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적연금과 운영시스템은 상당히 다양하고 개혁 방안에 있어 아주 창의적인 대안도 상당히 많다.”
MB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재정균형에 대한 시각이다. 박 전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 전사처럼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겠다”고 했을 정도다. 박 전 장관의 재임 시절 2013년이 목표였던 균형재정 달성 시기는 현 정부 들어 갈수록 뒤로 밀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재정균형에 대한 시각은 MB정부와 사뭇 다른 것 같다.
“재정에 대한 시각은 일종의 철학, 가치관과 연결돼 있다. 일종의 선택의 문제여서, 현 정부가 취하는 정책을 옳다 그르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재임 중 강조하던 톤에 비하면 너무 후퇴한 것 아닌가.
“다만 분명히 유념할 것은 있다. 재정지출을 늘리면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올라가고, 줄이면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재정지출을 늘리고도 성장률이 정체된 과거 일본처럼 가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재정지출에 따라 성장률이 오르내리는 효과가 유지되고 있지만 늘 경계해야 할 문제다. 국민들도 미래를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면 성장률을 다소 손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재임 중 포퓰리즘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최근에도 대증요법이 횡행하고 있다고 했다.(박 전 장관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월간 ‘나라경제’ 12월호 기고에서 “정치권의 표심경쟁 끝에 대증요법이 난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경기대응 자체를 대증요법이라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정치권발 대증요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가령, 전통시장을 위해 대형마트는 한 달에 몇 번씩 문을 닫아야 한다든지, 서점이 어려워진다고 도서 정가제를 도입하는 식의 대응은 문제의 근본을 외면하고 산소 호흡기로 환자를 연명하는 식의 처방이다.”
-이들 계층에 즉각적인 자력 대응을 요구하기도 무리한 것 아닌가.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당장 머리를 써서 대형마트를 이기라고 하는 게 현실적인지 모르겠다.
“전통시장도 똘똘 뭉쳐서 마트보다 더 경쟁력 있는 것, 가령 틈새시장 같은 걸 개척해 보게 하자는 얘기다. 정부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대형마트를 쉬게 하는 것보다 원할 경우 한 달 내내 문을 열게 하되 당초 휴무일이었던 날에는 상품 가격의 일정 비율을 전통시장을 위해 적립하게 하면 서로 윈-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에겐 새로운 활로를 위한 컨설팅도 해 주고. 대형마트 근로자 중 저소득층이 많은데 이들의 일자리도 생각해야 한다.”
박 전 장관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신기술 발달과 함께 자신의 교수직을 비롯해, 숱한 직업이 조만간 구조조정에 직면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급변하는 분야들이 많다.
“우버 택시(일반인이 자가용을 이용해 하는 택시영업)는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은 득이 되지 않는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이 해결책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기술 진보로 늘어나는 여가와 소득증가에 맞춰 새 직업을 모색해야 한다. 대학가에도 세계 유명 대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10만명씩 듣는 시대가 왔다. 대학은 1,2년만 다니고 나머지는 취직 후 온라인으로 수강해 7,8년 후 학위를 따는 세상이 곧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대응책이 필요할 때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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