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한 국정 운영 언급 피하고 "문건 유출 金 실장 등 책임 없어" 강조
"김영한 항명파동 아니다" 시중 여론과 동떨어진 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추어 쇄신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여론의 요구를 외면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속 시원한’ 약속을 하지 않았고 불통 지적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소통하라면 노력하겠다”는 식의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박 대통령은 국민적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은 채 '오직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며 원칙대로 가겠다'는 의지만 분명히 했다.
청와대 발(發) 잇단 파문에 대한 인식과 진단 문제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해 '송구'라는 표현을 세 차례 사용하며 사과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이 비선실세 권력암투 의혹으로 번진 근본 원인인 불투명한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언급을 피했다. 제2, 제3의 문건 유출 사건을 막기 위한 쇄신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박 대통령은 문건과 의혹이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점과 문건 작성ㆍ유출을 주도한 일부 인사들의 책임을 거듭 부각시켰다. 청와대가 그간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고 선을 그은 것도 박 대통령이 가진 인식의 연장선이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은 또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9일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사표를 낸 초유의 사태에 대해 "항명 파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이 김 비서실장의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을 명백한 항명이자 심각한 기강 해이로 보는 시중 여론과 사뭇 다른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김 전 수석은) 정치공세에 휩싸이고 문제를 키우지 않을까 걱정하는 차원, 민정라인에서 일어난 문서 유출에 책임진다는 차원으로 사표를 낸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래도 국회에 나갔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김 전 수석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함으로써 청와대 기강 논란과 김 비서실장 책임론 등 파장을 최소화하려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국민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 셈이 됐다.
개헌, 지금은 '논의도'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 일각의 개헌 추진 움직임에 대해 '지금은 경제 활성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지,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난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일축한 것과 같은 논리다.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어떻게 논의하느냐를 보지 않아도 결과가 자명하다"며 "갈등 속에 경제 문제와 시급한 여러 문제들이 뒷전으로 가버리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해 개헌 추진 뿐 아니라 개헌 논의 자체에 반대했다. 박 대통령은 "개헌을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이 불편할 것은 아니지만 개헌으로 날을 지새우며 경제 활력을 찾지 못하면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도 했다.
개헌 관련 찬반 여론이 갈려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발언은 개헌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개헌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가 개헌 논의를 시작할 적기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소통과 인사, 큰 문제 없다?
소통 문제는 박 대통령의 최대 취약점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 더욱 소통하고 여야 지도자들과 더 자주 만나도록 노력하려 한다"는 원론적 언급만 했을 뿐,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지난 2년 동안 민생 현장과 정책 현장에 직접 가서 터놓고 의견도 듣고 제 생각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했다"며 "청와대로 각계각층의 국민들을 많이 초청해 이야기도 듣고 활발하게 그런 것을 많이 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는 정치 이벤트가 아닌 진짜 소통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장관들이 대통령에 대면보고를 할 기회가 별로 없어 청와대와 정부 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우려나 청와대ㆍ정부 인사의 특정 지역 편중 등에 대해서도 큰 문제 아니라는 태도를 취해 불씨를 남겼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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