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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 언론수호자인가 단순 상업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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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 언론수호자인가 단순 상업지인가

입력
2015.01.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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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성향 프랑스 대표 풍자지

9·11 테러 후 이슬람 본격 비판

비평정신 vs 상업주의

전세계에서 프랑스 파리 국민광장으로 모여든 수백만 명의 군중이 11일 연쇄 테러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세계에서 프랑스 파리 국민광장으로 모여든 수백만 명의 군중이 11일 연쇄 테러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7일 오전 프랑스 파리 북쪽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곧 출간될 책을 위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던 편집부의 한 직원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총격 사건, 수명의 사상자 발생”. 처음 소식을 접한 직원들은 인터넷 헛소문이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사건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풍자지로 지면의 대부분을 만평에 할애하는 좌파 성향의 잡지다. 극우파, 사이비 종교,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정치, 문화 등 전반에 걸친 날선 만평으로 유명하며 그 때문에 여러 소송에 휘말렸다.

● ‘샤를리’는 샤를 드골 조롱하는 의미

샤를리 에브도의 창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격인 하라키리(Hara kiri)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 하라키리는 1960년 프랑수아 카바나와 조르주 베르니에가 창간했다. 일본어로 할복자살을 의미하는 하라키리의 기사는 냉소적이고 때로 외설적이었다. 어느 날 한 독자가 “당신들은 바보 같고 심술궂어요”라고 항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편집진은 사과 대신 이 내용을 잡지의 슬로건으로 삼아 버렸다.

‘바보 같고 심술궂은 잡지’ 하라키리는 대중의 인기가 높았다. 1961년과 66년 두 차례 판매금지를 당한 하라키리는 1970년 전직 대통령 샤를 드골의 죽음을 조롱하는 1면 타이틀로 폐간 조치되고 만다. 하라키리의 편집진들은 잡지를 계속 내려고 꼼수를 썼고, 그 방법으로 잡지의 이름을 바꿔 다시 내는 묘안을 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샤를리 에브도다. 어떤 이들은 샤를리 에브도라는 이름이 이 잡지에 연재했던 미국 만화 피너츠(Peanuts)의 주인공 샤를리 브라운(찰리 브라운을 프랑스 식으로 읽은 것)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 볼랑스키는 이 이름이 전직 대통령 샤를 드골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의 엄숙함과 금기에 도전했던 샤를리 에브도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재정 위기에 직면한다. 75년 대통령에 당선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탕은 18세 이상에게 투표권을 주고 낙태를 합법화하는 등 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쳤다. 이 주간지의 주독자층이던 68년 혁명세대들은 나이가 들면서 얌전해졌고, 젊은 세대들은 자유는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라 여겼다. 프랑스 사회 전반에 ‘투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 영향으로 샤를리 에브도는 독자수가 급격히 줄어 1982년 폐간되고 만다.

● 좌파 연예인이 되살려낸 샤를리 에브도

1992년 가수이자 칼럼니스트인 필립 발과 만평가 카뷔는 새로운 잡지의 창간을 기획하고 있었다. 마침 이들의 계획을 안 볼랑스키가 샤를리 에브도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필립 발은 사라진 잡지 샤를리 에브도의 대부인 프랑수아 카바나를 설득하고 예전의 만평가들을 다시 모아 샤를리 에브도를 부활시켰다.

과거 샤를리 에브도는 특정한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지만 좌파 내지 극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발은 이 주간지를 자신의 정치성향대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광고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광고를 싣지 않았다. 그래서 잡지 안에 여러 의견들이 공존하곤 했지만 발은 그의 입맛에 맞추어 잡지를 이끌었고 이 때문에 여러 동료들이 잡지를 떠나기도 했다. 발은 좌파라기보다 좌파 국회의원들과 친하다는 조롱도 들었고, 프랑스 재벌들의 모임에도 서슴없이 참석했다. 2008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아들이 유대인 재벌 딸과 결혼한 뒤 유대교로 개종한 사실을 비꼰 만평가를 반유대주의자로 몰아 내쫓은 적도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는 2009년 프랑스 국영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인터의 요직에 임명돼 샤를리 에브도를 떠난다. 그 뒤 샤를리 에브도를 이끌어갈 책임을 넘겨 받은 것이 이번 테러에 희생된 만평가 샤르브(본명 스테판 샤르보니에)였다.

● 9ㆍ11 이후부터 이슬람 비판에 주목

2001년 9ㆍ11 테러 이후로 아랍 근본주의 테러단체가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샤를리 에브도 편집진도 이때부터 아랍 근본주의가 그들의 비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칼럼니스트 호베르 미즈라히는 샤를리 에브도 지면에 이탈리아 작가 오리아나 팔라치의 반이슬람 서적을 옹호하는 기사를 실었다. 여러 단체들에서 이 칼럼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하자 편집진은 다음 호에 미즈라히의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실으며 논란을 종결지었다.

2006년 논란이 되었던 덴마크 일간지의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캐리커처를 샤를리 에브도가 입수해 다시 실었다. 평소 14만부 정도였던 이 주간지의 판매 부수는 그 만평으로 40만부 넘게 팔렸다. 프랑스의 이슬람문화자문위원회는 만평이 실린 이 주간지의 판매금지와 작가들이 무함마드 캐리커처 그리는 것을 막기 위한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이슬람은 우상 숭배를 금지해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것조차 잘못으로 여긴다.

그 해 5월 샤를리 에브도는 대표 필립 발의 발의로 ‘12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이슬람주의가 종교적 전체주의로서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규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서구 유럽의 여러 언론은 이 선언을 실었지만, 프랑스의 인권연대는 이 선언문이 이슬람을 악마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프랑스 우파 정권의 문화부 장관은 언론 만평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고 그 자리에 샤를리 에브도의 작가와 필진을 초대해 그들을 옹호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통해 자유선거가 실시된 튀니지에서 아랍근본주의자당이 집권하자 샤를리 에브도는 ‘샤리아 에브도’라는 특별판을 발행하고 또다시 무함마드가 등장하는 만평을 실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집권에 따라 가혹한 형벌로 악명 높은 샤리아 율법이 아랍세계에 부활할 것을 풍자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이슬람들은 또다시 흥분했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은 방화로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인터넷 사이트는 해킹 당했다. 사건 이후 편집진은 몇 달 동안 다른 언론사 곁방살이를 했고, 편집장 샤르브는 계속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다.

● ‘건전한 풍자’ ‘분노 조장’ 논란 계속될 것

더 큰 사건은 이듬해 일어났다. 이슬람을 조롱하는 유튜브 공개 영화 한 편 때문에 전 세계 무슬림이 분노하고 있을 때 샤를리 에브도가 나체의 무함마드 만평을 개제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던 아랍권 시위대들이 프랑스에도 화살을 겨누었다. 전세계 아랍 국가의 프랑스 관련 시설들은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고, 20여 곳의 해외 주재 프랑스 학교들이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프랑스에서도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는지, 판매부수를 늘리려는 상업주의인지 논란이 일었다. 우파는 대체로 샤를리 에브도를 옹호했다.

그러나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장은 “캐리커처가 나온 시점이 정말 잘못 선택됐다”며 “샤를리 에브도의 진짜 목적은 반이슬람적 기사를 규칙적으로 내보내 판매 부수를 올리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종교인류학자인 도니아 부쟈 역시 샤를리 에브도를 비판했다.

“우리는 양극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슬람이 낡아빠진 것의 정수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가 모든 것을 발명했다고 말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치 거울에 비추기라도 한 듯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이 모든 것을 발명했다, 이슬람은 우수하고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샤를리 에브도의)캐리커처는 두 세력간의 장벽을 더 높이 쌓아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양극의)담론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 비판할 만한 것들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없애 버린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이번 캐리커처 사태는 무슬림이든 아니든 이성, 비평정신을 위해 싸웠던 모든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앗아갔다.”

샤를리 에브도 만평에 대해서는 ‘건전한 풍자’라는 의견과 ‘명예훼손’ ‘분노 조장’이라는 비판이 맞서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이번 테러 이후 ‘나는 샤를리다’고 여러 사람이 말하는 한편에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다만 한 가지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은 파리 테러에 희생된 경찰 중 한 명이 이슬람교도라는 사실이다. 이슬람과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는 엄연히 다른 것이며, 프랑스 사회의 이슬람 역시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싸우고 있다.

박경은 만화가ㆍ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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