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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무기수입은 '미국산'으로 통한다?

입력
2015.01.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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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최종승자는 미국일 텐데 입찰 경쟁은 왜 하는 건지…”

미국 보잉의 KC-46A와 유럽 에어버스의 A330 MRTT, 그리고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의 KC767 MMTT가 경합을 벌이는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1조4,000억원대)을 놓고 네티즌들이 쏟아내는 의구심입니다. 한미 연합작전을 중시하는 군이 보나마나 ‘상호운용성’을 내세운 미국산을 택할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 대부분이 미국산인데다 한미동맹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그간 유럽산 전투기는 대형 무기 도입사업에서 매번 탈락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중급유기 사업에 뛰어들기 전, 에어버스 측에서 방위사업청에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 해도 되는 사업이냐”라고 진지하게 물었다고 합니다. 국방부가 한미동맹을 염두에 두고 미국 업체를 미리 낙점, 자신들은 들러리로 형식적인 경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지요. 2002년과 2013년, F-X(차기 전투기)사업에서 두 차례나 미국 업체에 고배를 마신 에어버스(2013년 8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에서 개명)입장에선 어쩌면 당연한 우려입니다.

우리 군이 유독 미국산 무기를 많이 수입한다지만 불곰사업으로 러시아산 전차, 장갑차 등을 들여 오는 육군이나 잠수함사업 기종으로 독일제를 선정했던 해군과 달리 공군은 3군 가운데 대미의존도가 특히 높습니다. 1948년 9월 육군 항공사령부가 미군으로부터 ‘L-4 연락기’ 10대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공군이 육군에서 분리, 공식 창설된 이래 항공기는 거의 모두 미제로 채워졌습니다. 공군 주력 전투기였던 F-4와 F-5는 물론 현재 주력 전투기로 활약 중인 F-16와 KF-16, F-15K도 모두 미국산입니다. 게다가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40대를 도입하는 3차 F-X 사업의 기종도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이지요.

이러한 공군의 ‘미제 선호 현상’에는 미국의 우수한 항공 기술과 구매 조건보다는 한미동맹과 상호운용성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게 세간의 평가입니다. 컴퓨터에 윈도우를 깔면 자연스럽게 MS워드나 엑셀, 파워포인트 등 윈도우용 오피스 제품을 쓰는 것처럼 한 번 미국산 항공기를 타면 전투기 체계나 그에 기반한 훈련 체계에 길들여져 또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만큼 호환도 되고 전쟁 시 미군과 상호보완적으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테지요.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한국의 공중급유기 사업에서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공군이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영공에서 공중급유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한국 F-15K 조종사 8명과 F-16 조종사 8명, 총 16명이 美 공군 교관조종사 9명과 함께 총 4회에 걸쳐 공중급유비행을 실시하고 공중급유자격을 획득했다. 공군 제공.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한국의 공중급유기 사업에서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공군이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영공에서 공중급유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한국 F-15K 조종사 8명과 F-16 조종사 8명, 총 16명이 美 공군 교관조종사 9명과 함께 총 4회에 걸쳐 공중급유비행을 실시하고 공중급유자격을 획득했다. 공군 제공.

그렇다고 해서 유럽산 항공기 구매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유럽산 항공기에 데이터링크를 비롯한 미측 관급 장비를 장착하면 상호운용성 문제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사청도 “상호운용성은 성능이나 운용적합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미국 기종을 선택해야 하는 큰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한미가 연합작전을 펴야 하기 때문에 미국산 무기를 구입해야 한다는 건 일종의 고정관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업체가 독점했던 과거 F-X 사업을 되돌아보면 한미동맹과 상호운용성은 무시 못할 요소였습니다.

2002년 미국 보잉의 F-15K와 프랑스 다소의 라팔, 유럽 EADS의 유로파이터, 러시아의 Su-35가 각축전을 벌인 1차 F-X 사업에서 보잉의 F-15K으로 최종 결정되자 뒷말이 무성했습니다. F-15K와 라팔이 성능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기술이전 측면에서는 후자가 더 우수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종 선정을 앞둔 2001년 11월 제3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 장관이 우리 정부에 F-15K 구매 압박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최근 기종이 결정된 3차 F-X 사업(2차 사업은 F-15K 20대 추가 구매)에서도 또 다른 차원의 한미동맹이 논란이 됐습니다. EADS의 유로파이터와 록히드마틴의 F-35가 정부가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액수를 써내 애초에 탈락, 보잉의 F-15SE가 최종 입찰대상자가 됐지만 정부가 이를 번복하고 F-35를 기종으로 최종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미국산이라 해도 미국 정부 입장에선 세금으로 개발되는 F-35에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F-35를 많은 국가에서 사줘야 많이 생산하게 되고 그래야 가격이 낮아지고 세금도 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F-35를 한 대라도 더 팔아줘야 미국 정부에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정부가 보잉과의 소송전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F-35로 급선회하는 데 미 정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F-35 선정은 미국의 압력과 우리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F-X사업의 일등 공신이 한미동맹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물론 우리 공군에도 최초의 非미제 항공기인 영국산 훈련기 T-59(2013년 영구 퇴역)와 스페인산 수송기 CN-235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들이 미국산과 경쟁에서 승리한 기종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특히 T-59는 쿠데타로 집권해 대외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전두환 대통령이 1986년 4월 영국을 방문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구매를 결정한 걸로 전해집니다. 사실상 영국으로부터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사들인 것이지요. 그러나 1992년부터 20대를 도입한 T-59가 잇따라 추락사고를 일으키면서 오히려 ‘전투기는 역시 미국산’이라는 인식을 재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T-59가 유일한 영국제 항공기라 평소 부품 수급이 어려워 정비에도 차질이 빚어졌던 것입니다. 소량이다 보니 아무래도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게 된 것이지요. 10년은 더 운용할 수 있는 T-59를 2013년 조기 퇴역시킨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올 3월쯤 최종 승자가 결정되는 공중급유기 사업에서도 미국산이 통할까요?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미국(보잉)과 유럽업체(에어버스) 간 경쟁이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급유기는 무기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상호운용성 보다는 조종사들의 숙달 여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미국산 전투기인 F-15를 쓰는 싱가포르는 공중급유기로 이미 에어버스 MRTT를 구매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완성된 기체로 기술을 검증 받았지만 기체 크기 때문에 마땅한 활주로를 확보하기 힘든 에어버스의 MRTT와 생화학, 전자기파(EMP)공격에 대한 방어능력은 갖췄지만 현재 개발 중에 있는 보잉의 KC-46A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그간 전투기 구매 확정 이후 기술 이전에는 소극적으로 나왔던 미국 업체로부터 ‘호갱님’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유럽 무기를 절충해서 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우리도 유럽산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보여주면서 앞으로는 업체를 저울질하며 좀 더 많은 기술 지원을 받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독도, 이어도 등에서 공군의 작전 시간을 2~3배 늘려주고 작전 반경을 넓혀주는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 1993년 12월 합동참모회의에서 소요가 결정됐지만 이후 11차례나 좌절을 겪다가 이제 최종 업체 선정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산이 통할 지, 아니면 이번에는 유럽 업체가 새 판로를 개척할 지, 군 당국의 결정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돼 있습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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