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는 작품 세계 조명
현판 원본·탁본 등 175점 모아 15일부터 백악미술관서 전시
한국 서예의 근간을 마련한 거목 일중 (一中) 김충현(1921∼2006) 선생의 발자취를 한데 모은 전시회가 15일부터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예가 건축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이번 기획전은 1942년부터, 파킨슨병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 직전인 1997년까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일중이 쓴 전국의 현판 중 175점을 모았다. 이중 화선지에 쓴 원본 4점, 탁본 8점 등 47점은 실물 전시한다.
현판은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거는 널조각으로 궁궐, 사찰, 사당, 유적지, 고택의 얼굴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현판을 통해 일중의 예술세계와 당대 예술계에서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경복궁의 건춘문(建春文), 영추문(迎秋門) 현판을 비롯해 충무공 기념비, 검색하기"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묘비, 순천 송광사, 고창 선운사, 김제 금산사 등 전국 명찰의 일주문 현판, 한글로 쓴 ‘한강대교’ ‘독립기념관’과 삼성그룹 옛 한문 로고 등 친숙한 글씨가 모두 일중의 작품이다. 동생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 역시 명필로 형제가 20세기 한국 서예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했다.
전시는 크게 개인에게 써준 것과 공식 요청을 받아 쓴 것으로 나뉘는데 건축물의 성격과 쓰임에 따라 다양한 서체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서풍을 감상하는 것이 큰 재미다. 일중은 초기인 1940, 50년대는 기교가 없는 순박한 글씨를 구사하다가 1960, 70년대에 들어 웅건하면서 밀도있는 서풍으로 변화를 줬다. 건축물에는 표준적인 해서체로 강직하면서도 선이 굵고 웅장한 글씨를 썼다. 1980년대는 일중 서풍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데 한나라 예서의 서풍을 골고루 섭렵한 후 만든 특유의 ‘일중풍 예서’를 창안하게 된다.
일중은 궁체,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을 연구해 ‘한글 고체’를 창안하는 등 국한문 서체에 두루 능숙했으나 역시 예서에 탁월했다.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일중풍 예서는 파책이 강하지 않고 부드럽고 길게 늘어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이 있고 골기가 있어 힘차 보인다”고 평가했다. 옆의 글자와 부딪힐 듯 피해가면서 획간이 성기지 않은 일중풍 예서는 마음껏 멋을 부리면서도 정연한 원숙미를 갖춘 게 특징이다. 한글로 쓴 것은 많지 않은데 궁체로 쓴 ‘한강대교’ 외에는 모두 그가 궁체, 훈민정음, 용비어천가를 연구해 창안한 한글 고체로 쓰였다.
당대의 학자, 화가들과의 교유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넓힌 일중은 경사가 있는 자리에서 붓을 들기 꺼리지 않았다. 일중의 예서 편액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빼어난 것은 1983년 제자인 초정 권창륜의 집 당호로 써 준 ‘예천법가(醴泉法家)’를 꼽을 수 있다. 취기가 약간 있을 때 쓴 것으로 전해지는데 자유스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자간이 촘촘하면서도 네 글자의 대소, 장단, 조세, 먹의 농담이 변화무쌍하고 파격적인 면모를 보인다. 낙관 초서에서도 특히 제자 초정의 호에서 ‘초(艸)’자, 스승 일중의 호에서 ‘중(中)’자의 세로획이 변화무쌍한 게 백미로 꼽힌다. 전시는 다음 달 25일까지. (02)734-4205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