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창조
켄트 플래너리ㆍ조이스 마커스 지음, 하윤숙 옮김
미지북스 발행ㆍ1,004쪽ㆍ3만8,000원
사람 사는 세상 치고 불평등 없는 데가 어디 있느냐는 말은, 어쩔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이 책 ‘불평등의 창조’는 그게 자연스러운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자는 정치적 제안은 없지만, 적어도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전거로는 충분하고 강력하다.
미국 미시간대의 두 교수, 인류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고고학자 조이스 마커스가 함께 썼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진화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파헤친 역작이다. 인류가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간 기원전 1만 5,000년 전 빙하시대의 고고학 성과부터 20세기 초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작은 사회집단까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 진화의 논리를 추적했다.
인류 사회가 처음부터 불평등했던 건 아니다. 인류의 초기 조상은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았고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려고 적극 노력했지만,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불평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인구 성장이나 잉여 식량, 귀중품의 축적만으로 불평등이 생겨난 건 아님을 많은 사례가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불평등은 모든 인간 집단의 핵심에 있는 고유한 사회 논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의 사회 논리는 서열 순위가 바탕이다. 채집수렵 사회에도 서열은 있었다. 그러나 불평등한 위계는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니, 초월적 존재인 신이 일인자, 이인자는 조상의 영혼이다. 살아 있는 인간은 누구도 일인자나 이인자가 될 수 없었다.
불평등은 바로 이 서열 순위를 조작한 결과다. 남들보다 높은 지위를 세습하려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가계가 신이나 조상 영혼과 관계가 있음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킴으로써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신, 조상 영혼, 인간으로 이어지는 서열 순위가 애초에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략이다.
책은 인류가 평등사회에서 왕국, 노예제, 제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요인과 조건, 그에 저항하는 힘,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논리적 조작, 그에 따른 사회 변화를 치밀하게 그려 보인다. 평등 사회에서 불평등 사회로 변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사회 형태, 불평등의 수준, 불평등의 사회 논리, 생존 방식, 고고학적 특징을 주요 단계별로 설명한다. 예컨대 평등사회는 대가족보다 크지 않은 혈연집단, 수렵과 채집, 식량 공동분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때는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지위나 명망에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집단 간의 경쟁, 개인의 야심, 명망을 쌓을 수 있는 조건이 작용해 성과 기반 사회로 나가면서 세습은 막되 명망을 쌓는 것은 허용했다. 사회 성원들이 세습에 저항하면 평등사회로 돌아갔고, 세습이 정당성을 확보하면 불평등 사회가 탄생했다.
10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등장하는 사례들이 흥미롭고, 설명은 알기 쉽게 돼 있다. 내용이 풍부하고 신선해서 지적인 포만감을 안겨 주는 책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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