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경제제도 등 손질할 때, 개헌 논의 틀은 정개특위 내 소위로
중대선거구 통해 다당제로 가면 연합 정부 구성 과정 타협 정치 가능
정의화 국회의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정치권 물밑 논의가 진행되는 개헌 문제를 연말을 시한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헌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극도로 다양화됐고 갈등의 문제도 복잡다단해 졌다”면서 “권력구조를 포함해 분권 지향의 지방자치, 규모에 맞는 경제제도 등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장은 “(개헌에 따른)권력구조 변화는 차차기에 적용하고 사회ㆍ경제ㆍ문화 변화는 바로 적용하면 블랙홀은 걱정 안해도 된다”면서 개헌 논의에 쐐기를 박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블랙홀’우려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_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가 많다.
“국회의장 입장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 다만 국민이 바라는 얘기를 다 안했을 수도 있고, 박 대통령 입장에선 완곡하게 표현하다 보니 국민이 느끼기엔 좀 미흡했을 수 있다.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_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를 강조하면서 개헌 논의에 거듭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개헌 블랙홀’ 얘기를 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의원들의 관심이 개헌보다는 선거구 조정에 더 쏠려 있어 상대적으로 개헌에 동력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헌 논의 과정에서 권력구조 관련 부분은 차차기 대선부터 적용한다면 블랙홀 상황으로 가지 않을 수 있다. 또 정개특위를 빨리 구성해야 한다. 개헌논의의 틀로 정개특위 내 소위로 두거나 개헌특위를 따로 꾸리는 방안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_여론도 개헌 요구가 강한데 그 이유를 뭐라고 보나.
“1987년으로부터 벌써 28년이 지났다. 그간 대한민국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경제규모만도 10배 정도 커졌고 사회의 작동 원리와 갈등 요인도 훨씬 복잡해졌고 다양화했다. 이를 반영해야 한다. 경제분야와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각각 9개, 2개 뿐이고, 사회ㆍ문화분야 등도 상당히 빈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에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도입했는데 충분히 검토한 결과라기 보다는 정치적 판단의 결과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6ㆍ29 선언 이후 개헌 논의가 다소 서둘러 진행된 측면도 있다.”
_선거제도 개편 및 선거구획정 논의의 프로세스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정개특위를 2월 15일쯤 구성하면서 동시에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선거제도 개혁 국민자문위원회’를 꾸릴 것이다. 자문위에서 선거제도 변경 및 비례대표제 개선 여부 등에 대해 먼저 논의를 해서 제안하면 이를 정개특위에서 논의해 확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거구획정위를 꾸려 실질적인 선거구 조정에 들어가도록 할 생각이다.”
_선거제도 개편의 방향은 어떻게 돼야 하나.
“선거구제의 경우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 제도이고 양당제로 가는 건데, 이 제도가 분열의 정치로 귀결된다는 건 경험적으로 확인됐다.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해 다당제로 가면 전체 국민을 보면서도 지역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게 가능하고, 과반정당이 나오기 힘드니 어떤 식으로든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타협과 통합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원내교섭단체 기준도 10석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여론은 아직 소선거구제에 대한 지지가 조금 높다.(한국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소선거구제 선호도는 49.2%, 중대선거구제는 37.6%였다)
“나도 초ㆍ재선 때는 소선거구제를 선호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소선거구제를 관철시켰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취임 이후엔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했다. 사실 국민들 입장에선 두 제도의 장단점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정개특위가 꾸려지고 선거제도 개혁 국민자문위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_중대선거구제도 보완이 필요하지 않나.
“현실적으로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간극이 너무 크다. 비록 숫자는 적더라도 새누리당과 야당이 각각 호남과 영남에서 몇 사람씩은 당선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서 동시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를 도입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새누리당이 다소 손해일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이렇게 가야 한다.”
_비례대표 의원 확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처럼 밀실 공천을 할 거면 비례대표를 오히려 줄이는 게 맞다. 물론 비례대표의 취지를 살리면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천제도를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갈 경우 숫자를 늘려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전국을 5,6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7,8명을 선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례대표 수는 현행 54명을 유지한 가운데 일단 제도는 도입하는 것이다.”
_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의원 1명당 대변하는 국민 수가 많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 통일 이후 2,500만명에 대한 대표를 더 뽑으면 현행 300명을 기준으로 해도 450명 정도가 되는 만큼 지금보다 더 늘리는 것에는 반대한다. 대신 수도권 중심주의가 강하고 거대 정당들의 지역 기반이 분명하게 나뉘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양원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
_양원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개헌을 하면 전체적으로는 권력을 분산하되 직선 대통령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는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통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양원제는 필수적이다. 양원제는 시험적으로 먼저 시행해도 된다. 서울이나 경기를 2,3개 정도로 쪼개 광역자치단체별로 2명씩, 40명 정도로 구성해 통일ㆍ외교ㆍ안보 현안들에 대해 한번 더 절차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회의원 정수를 340명으로 늘리는 효과도 있다.”
_여야 공히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아직까지는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몇몇 실세들이 아니라 국민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더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
_정치자금법을 손질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현실적으로 정치불신이 강한 상황에서 개별 의원들이 1억5,000만원 한도까지 후원금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쪼개기 후원금 논란까지 생긴다.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만 제도적으로는 중앙선관위가 국민들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모아서 이를 의원들에게 배분하는 공영제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인터뷰=김정곤 정치부장 jkkim@hk.co.kr
정리=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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